몇 개월 전에 우리 교회 한 가정으로부터 흥미로운 연락을 받았다. 가정에서 구제헌금으로 준비된 금액이 다소 있는데, 그 금액으로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 를 묻는 질문이었다.
당시 적정기술을 한 참 공부하고 있던터라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원조, 일방주의적 원조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지원한 것이 오히려 마을 간의 분쟁을 만들어 생명을 오히려 잃어버리거나 자생력은 잃어버리고 현지 사회에 오히려 않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많이 접했던 터라 보다 신중한 후원을 권고한 바가 있었다.
첫 제안은 오지의 가난한 마음에 우물을 하나 파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의였다. 당시 500만원 정도면 우물 하나를 팔 수도 있기는 했지만, 하수처리를 해결하지 못해서 오염된 물의 유입으로 우물 파주는 사업이 년간 사업으로만 크치는 경우도 들었고, 거액을 통해서 암반수를 뚫지 못하면 어차피 너무 제한 적인 지원이라를 이야기를 들어서 선듯 우물 파주는 사업에 권하기가 어려웠다.
당시 난 적정기술을 소개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후원하는 기관과의 관계가 중요하니 소통하면서 잘 알아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권해드린 적이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는데, 지난 주에 그 가정에서 다시 날 찾아왔다. 나의 이야기 때문에 결국 후원을 하지 못했는데, 어디든 돕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야할지 자문을 구하는 것이었다. 다소나마 금액은 준비되어 있으니, 추천만 해주면 돕고 싶다는 말씀이었는데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를 돕고자하는 그리고 보다 잘 돕기 위한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 너무 감사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난 알고 있는 지인분들에게 자문을 구해서 후원할만한 프로젝트를 찾아 보기로 했다. 후원하고자 하는 가정에서 제시한 방향은 몇 가지 있었다.
1.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요.
아프리카를 비롯한 극심히 기아에 고생을 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메시지
2. 어린이들에 대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상이 제한된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혜택이 어린이들에게 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3. 기관 종교 등을 떠나서 보다 효율적인 구제활동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기독교였으면 좋겠으나, 제한은 없습니다. 후원을 해도 않좋은 사례가 많다고 하니 온전히 사업비로 활용되고 현지인들의 실제적 삶을 개선하는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메시지
관련 내용을 지인분들에게 전달하고, 위의 3가지 취지에 적합한 사업에 대한 제안서나 설명서를 받고 그것을 그대로 후원을 원하는 가정에 전달할 예정입니다.
관련 내용은 저도 받아보아 기도에 동참하고, 가능하면 이번 내용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서 새로운 기회로 삼아 볼까~ 합니다. 관련 내용을 답신을 받는데로 지속적으로 블로그에 올리겠습니다.
최근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개발도상국 진출방안"을 주제로하는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청년실업해소를 위한 개발도상국 진출방안"으로는 크게 해외취업을 비롯해서 해외인턴과 해오봉사단 영역으로 중심으로 기존 사업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는데, 어제는 특별히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서 2년 이상 개발도상국가들에서 활동을 했던 단원들을 초청해서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왼쪽부터 ; 이주연(이티오피아 4년 이상), 임진숙(인도네시아), 김대중(탄자니아), 강인재(행정학 박사), 양연수(인도, 탄자니아), 이종현(국제백신연구소 근무), 기타 사진에 없는; 고은경(스리랑카, 중국 등), 하재웅(몽골, 중국 등)
<표 2-1> 연도별 파견현황
(단위 : 명)
계
’90
’93
’95
’97
’99
’01
’02
’03
’04
’05
’06
’07
’08
5,569
44
51
106
138
103
181
207
208
729
723
773
964
829
※ 자료출처 : 한국국제협력단
오랫만에 만들어진 한국해외봉사단들간의 모임이라 2시간 30분 가량 진행된 모임의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우선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했던 경험이지만, 유사한 체험의 공유와 다들 애정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더욱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해외봉사단원의 활동은 기본 2년간의 활동이지만, 대부분 4년에서 많게는 8년 이상까지 해외봉사 혹은 유사 업무를 진행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번 모임의 핵심중에 하나는 과연 한국해외봉사단의 경험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가?였다.
자신의 경력관리는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경우와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대답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였다.
그 원인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사회적 인식의 부족.
아직 한국사회는 개발도상국에서하는 봉사활동이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다. 특히 '봉사'라고 하는 단어 속에는 무임금, 비전문성, 허드렛 일 같은 이미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회사나 사회에서 필요로하는 직무연관성에서는 의미있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보니 한국해외봉사자들에게 다가오는 시선도 유별난 사람, 방랑벽이 있는 사람 등의 시선이 있기도 하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영문이름에서 한국과 유사하게 JOCV(Japan Overseas Cooperation Volunteers)라는 말을 쓰지만, 일본어 명칭에서는 '일본해외협력대'라는 이름으로 파견하고 있다. 봉사라고하는 한국의 왜곡된 시선 속에서 우리도 심각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미국에서 파견하는 '평화봉사단'은 봉사와 자원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가치가 높을뿐만 아니라, 활동할 때부터 문제해결 능력이나 문화적 접근성에 대해서 체계적인 교육과 귀국 후에도 석사 프로그램이나 대학 연계 활동 등으로 회사나 기관들에서는 평화봉사단원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활동할 때도 체계적으로 관리해서 귀국 후 그들의 활동 증명서에는 그 활동 내역이 매우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활동과 업적이 기록된다.
반면 우리 나라의 한국해외봉사단원은 귀국 후 2년 혹은 3년간 어느 국가에서 00분야로 활동했음만 증명된다. 물론 이는 부족한 관리 인원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기도하지만, 하루 빨리 개선될 필요성이 있다.
2. 경력인정이 안되고 있다.
취업에서의 활용은 고사하고, 중요한 시기에 2년의 활동이 한국의 직장에서는 공백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에서 군대에 다녀오면, 최소한 정부기관(공무원)에서는 경력이 인정된다. 그러나 한국해외봉사단의 경우는 한국 정부에서 조차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재밌는 것이 해외봉사를 군대 대신에 다녀오는 국제협력요원의 경우에는 경력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으니, 제도적 모순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회사나 각 기관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외봉사단원의 경력이 근무 경력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 (기관의 업무와 현지 활동 내역이 맞는 경우 인사팀의 배려로 인정되는 경우를 많이 보기도 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평화봉사단'출신들을 연방정부에서 특채로 선발하고 있다. 각 지역별 커뮤니티도 잘 구성되어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단원간의 유대도 돈독하여 사회적 기여가 크니, 자연스럽게 취업을 비롯한 사회적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3. 역량개발이 안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는 기관의 속성상 원조사업의 일환으로 해외봉사단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관리에 급급하지, 단원들의 역량개발이나 취업의 문제는 부차적인 관심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선진국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적은 관리 인원이 배치되다보니 보다 생산적인 단원들의 역량 강화는 현장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귀국 단원들의 대한 예산도 대부분 귀국 정착비로 활용되고, 최근 지역별 커뮤니티 구성이나 교육 사업의 활동 등으로 새로운 변화를 보이고 있기는 하나, 여전히 유의미한 결과는 보기에는 매우 미흡하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개인별 활동에 대한 내역 및 만들어진 정보의 활용도를 높여 적극 사회에서 활용하고 있으며, 해외봉사단원들이 귀국하기 6개월 전부터는 취업이나 진학에 대한 개별 관리를 해주고 있다. 현지에서부터 이렇게 지원이 되고 있으니, 귀국 후 관련 데이타는 자연스럽게 각 지역별 조직으로 이관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된다.
한․미․일 해외봉사단 관리조직 현황 비교
구분
한국 KOV
('07년 기준)
일본 JOCV
('06년 기준)
미국 Peace Corps
('06년 기준)
현활동인원
32개국 1,329명
77국 2,496명
73국 7,749명
국내
조직
인원
총원
3팀 23명
11팀 53명
약 950명
직원1인당
단원수
58명
47명
8명
해외
조직
인원
총원
관리요원:39명
관리요원:192명
건강관리요원:45명
약 1,500명
(현지인 1,300명포함)
관리요원
1인당 단원수
34명
10명
5명
※ 출 처 : 한국국제협력단
이러한 한계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부분은 향후 작성되는 연구 보고서를 참고해주시길 ^^;;
제가 쓴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라는 책의 독자 분으로부터 받은 메일에 대한 답을 작성한 것이데,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독자 분께 양해를 구하고 관련 내용을 공유합니다.
하재웅 강사님 안녕하세요!
저는 00 공모전에 참가한, 00대학교 000 입니다.
* 뿌리와 새싹은 환경운동 네트워크입니다.
몇달전 쯤에 전북대학교에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강연에 참가하기도 했고, 이 메일주소도 그 때 구입한 책에서 보고 메일을 보내드려요. 아! 이책 정말 좋은데요! 궁금한점들이 막 해결되고 좋은데요 ㅎㅎ아! 제가 궁금한점이 나와 있는곳은, 이책 P67쪽 4) 기업의 이기주의가 자원활동을 왜곡하고 있다?라는 부분입니다.
사실 저희 00팀이 친환경등산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홍보물 제작에 필요한 비용을 기업의 후원을 받을 생각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고 저희가 하는일이 지금 옳은 일인지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 기업후원제안서 내용
기획의도 설명하고, 홍보물 제작에 필요한 비용 견적서를 뽑아 딱 필요한 만큼의 후원금 요청. 혹은... 1000원 단위의 소액 기부금 요청 등. 작은 돈이지만 지역사회의 참여에 의의를 둔것인데요. 대규모의 후원금 요청이라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만큼의 후원금 요청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 정도의 생각도 위험한 것인지? 아니면...저희들의 자비를 들여서 하는게 차라리 나은 것인지 문의드리고 싶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
** PS. 개인질문
전주에 아태무형유산 사무국이 건립되는데, UN에서 카테고리 2급 기관으로 승인받았다고 하는데.
카테고리 2급기관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요! 아 그리고 ㅠㅠ 저 이곳에 취직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이제 졸업이 1년남은 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000 님~
이렇게 연락을 주시고, 서적에 대한 멋진 격려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요즘은 이 gmail을 자주 사용하다보니, 메일 체크가 늦었네요 ^^;; 책에서 언급되었던 기업 이기주의라고 하는 부분은 기업이 가지고 있는 목적 지향성입니다.
예를 들어 해외봉사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기업은 현지인들이 발전하는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떻게하면 자사를 홍보하는가?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현지의 다양한 문제나 네트워크 활동 쪽에는 관심이 적고,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하죠~ 물론 case by case~
제가 경험했던 00기업의 경우는 정말 수행하는 기관에 입장과 역량을 많이 배려해주는 기업도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김은지 님이 추진하시는 친환경을 위한 등산 캠페인에서 기업의 후원을 활용하는 것이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기업의 이기주의가 있더라도 기업의 후원이 없으면,
사라져 버렸을 의미있는 활동이나 업적도 꽤 많거든요!
기업의 활용은 매우 필요하고,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특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명확하게 서로의 필요를 파악하고, 좋은 파트너를 맺으면 상생협력이 되는 것이죠!
저의 경우에는 NGO들이 기업들의 돈에 끌려다니는 형태를 많이 보아와서 걱정을 했던 것인데,
왜 기업이 도와야하는지 명확한 가치를 가지고 기업에 끌려가지보다는 당당하고 자신있게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핵심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 질문의 답변 ^^)
UN 카테고리 2급은 UN이나 UN 산하기구처럼 직접 관련있는 UN기구는 아니지만, 유엔의 협약 기관으로 로고나 명칭 사용이 허가된 협력 기관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태무형유산 사무국에서 근무를 원하신다면, 사무국이 필요로하는 인력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죠? ^^;) 그럼 어떠한 일이 진행되는지 아셔야겠죠? 유사한 업무들이 대전 아태사무국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습니다.그곳에서 인턴이나 관련 활동들에 참여해서 그 곳에서 어떤 업무들이 진행되고 그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하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일반적으로 외국어 능력이 중요하고, 관련 경험이 있는 것도 큰 요소로 작용합니다. 관련 기관의 인턴 경험이나 문화교류 및 행정업무 경험 등~
너무 한 기관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원하시는 분야의 넓은 고용시장을 보시고 준비하시면 훨씬 유리할 것 같습니다.
꿈꿀 수 있는 시기가 정말 행복한 것 같습니다.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달려가는 그 행동이 제가 바라보는 행복이구요~
항상 행복하시길 ^^
인천UN기탁도서관에서 멘토들과의 만남 요청을 받고 3기 멘토로 이준석 팀장과 더불어 도서관 시민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서관에 붙은 포스터 사진 >
따로 강의를 하기보다는 편하게 사전에 신청을 통해서 찾아온 시민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략 15명 정도의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이었는데, 주로는 10대와 20대가 많았지만, 30대와 40대 이상도 보이는 다양한 연령대였답니다.
준비된 시간을 통해서 개인적 경험들을 나누면서 참여자들이 궁금해했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주로는 국제기구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어떻게 국제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고, 다름으로 해외봉사와 관련된 질문 그 밖에 개인적 체험을 묻는 질문이 많았답니다!!
< UN정보검색법을 강의하는 이재신 사서님과 UN기탁도서관 관장님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
< 이날 참가자들은 멘토와의 만남, UN정보 검색법 그리고 이날 참가에 대한 수료증 시상까지 있었답니다 >
수료증을 수여하고 계신 미추홀도서관의 한상희 선생님이십니다!
멘토와의 만남 시간을 수료했다는 수료증입니다! 사서님이 참 간지나게 만드렸네요!!
여러모로 서울에서 강의할 때와는 다른 느낌을 갖을 수 있었던 인천에서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하신 분들 중에는 "오늘강연들엇던고딩입니다오늘정말가기잘한거같아요감사합니다참블로그에유용한자료많은거같아요" 라는 문자를 비롯해서 감사의 연락을 주신 분도 있답니다.
배화여자대학교에서 코피온을 통해서 캄보디아로 해외봉사활동을 떠나게 되는데, 출국 전에 사전교육 강의를 진행했다. 감사하게도 배화여자대학교의 김주영 학생의 도움으로 강의 녹취가 이루어졌다. 녹취를 위해서 수고해준 김주영 학생에게 감사를 드리며, 녹취 내용을 공유합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국제 자원 활동의 자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라고 말하고 싶어요. 뱀처럼 지혜롭게는 이기적 동기를 의미하며 비둘기처럼 순결하게는 이타적 동기를 의미합니다.
스포츠카의 비애를 아시나요?
여러분들은 해외 봉사 활동을 어떤 동기로 가나요? -경험적 차원, 해외봉사활동은 학생일 때에 가능하다- 스포츠카의 비애라는 말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스포츠카를 갖길 원하는데 젊었을 때는 돈이 없어서 스포츠카를 못 사고 스포츠카를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되면 나이가 들어서 스포츠카를 살 수 없어요. 해외 봉사도 마찬가지로 젊어서는 돈이 없어서 못 가고 나이가 들어 경제적 능력이 생기면 시간이 없습니다.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보다 빛나는 이기적 동기로 활용하자!
이러한 이기적 동기를 스펙적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그 경험에 대한 자산적 가치를 자신이 얼마나 활용하는가?에 따라서 매우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그 100이라는 경험적 자산을 200 혹은 300, 800 이상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자산을 30, 20 정도로 혹은 마이너스로 표현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요소를 잘 이해하고 보다 많이 활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경험들의 가치를 확대(포장도 필요)해서 나의 이익을 위해 잘 활용하세요. 내가 어떻게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에선 봉사라고하면 불쌍하니깐 내가 물질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해외에 있는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뭔가를 주지마세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더 의존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서 피해만 주고 오지 않으면 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관점을 넓히고 역량을 개발하고 꿈을 키우세요. 사실 이기적 동기가 충족이 되어야 지속적인 봉사가 가능합니다.
티핑포인트를 만들기위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타적 동기에 대해 애기하자면 먼저 꿈에 대한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어요. 우리가 그 꿈을 이루려면 전문성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데 전문성을 가지려면 엄청난 인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Tipping Point 아세요? 비슷한 의미로 물이 끓을 온도를 말할 수 있는데 어느 한 정점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한국적으로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통해 설명할 수 있어요. 마늘과 쑥을 100일 동안 먹으면 사람이 된다는데 호랑이는 도중에 포기했습니다. 만약에 30일을 먹으면 발이 점점 사람발로 변화된다면 호랑이는 100일 동안 인내 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문성을 갖기 위해선 이러한 인내력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당장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문성개발의 원칙 3F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3가지를 기억해주세요. 3F Focus(집중), Fund(투자), Future(블루오션): 첫 번째, 어떤 한 분야에 집중하고 구체화 세분화 시키세요. 그래서 그 분야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발휘하세요. 두 번째, 자기 자신에게 투자를 해야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장기적으로 투자하세요. 그래서 그 분야에서 자신을 필요로 할 수 있도록 만드세요. 세 번째, 자신이 진출하려는 분야가 전망이 있는 분야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있는 분야가 점점 더 커질수록 나의 노력과 관계없이 그 자리에 잇는 것만으로도 나의 입지도 같이 점점 커지게 됩니다.
사실 이 3가지 포괄하는 것은 바로 만남이에요. 만남과 관련해서 그래프를 하나 보여 드릴게요. X. Y. Z 좌표가 있는데 X좌표는 간접경험을 의미하고 Y좌표는 직접경험을 의미합니다.
간접경험에는 책, 영상물, 정보스틱 등이 있어요. 우리는 자신의 인식의 틀만큼 꿈꿀 수 있어요. 소위말해 인식의 틀은 여러분들이 꿈꿀 수 있는 범위를 말합니다. 내가 아는 만큼 꿈을 꾸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번에 해외봉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 인식의 폭이 넓어져요. 그리고 세계와 캄보이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여러분들의 다문화에 대해 인식의 폭을 넓혀 줄 것입니다. 간접경험 자체가 인식, 지식, 지혜의 폭을 넓혀주는 것입니다.
직접경험은 체험, 체득화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농구를 배우는 것처럼 이론만으로 농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경험을 해봐야 농구를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내가 갖고 있는 X좌표의 간접경험(정보습득)과 Y좌표의 직접경험의 만나는 접점으로 생긴 범위만큼이 나의 포지션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정보습득이 약하면 많은 직접경험을 해도 나의 포지션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범위가 내가 뻗어나갈 수 있는 전문성의 정도예요. 직접경험과 간접경험 둘 다 많아야 이 범위가 넓어집니다. 해외봉사를 나가면 여러 가지 변수가 많습니다. 만나는 사람, 시간, 장소에 따라서 상황이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체득화 되어 있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전문성을 가지려면 간접경험과 간접경험을 통해 체득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타적 동기의 핵심은 겸손
이제 이타적 동기를 본격적으로 애기하자면 봉사에 대한 자세를 애기하자면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컨텐츠가 있어요. 그런데 사회적 소통은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사회적 소통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컨텐츠만 있어서는 안 되고 사회적인 만남이 함께 존재해야합니다. 만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합니다. 실력 없이는 사회적 만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력을 기본으로 겸손이 필요합니다.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3가지로 애기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네트워크, 두 번째 기회, 세 번째 효과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머리 좋고 뛰어나도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일을 하다보면 사람과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거만한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과 함께 일하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일을 할 때에 겸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실력을 기본으로 겸손해야 기회가 많이 찾아옵니다. 마지막으로 요즘처럼 개방화 참여화가 되어있는 사회에서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파생되는 효과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의를 하는 강사에게 겸손이 부족하여 부정적인 반응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이나 강의를 통한 파생되는 효과에서는 겸손이 중요합니다.
해외봉사에서 활용되는 이기적 동기와 이타적 동기
그러면 이러한 것들이 해외봉사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전문성을 살릴 분야에 대해 준비하여 현지에서 그 분야에 집중하여 관찰해야 합니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생각하면서 현지를 경험하세요. 해외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저는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라고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제 분야는 요리이게 때문에 캄보디아요리를 공부해서 현지에서 이러저러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지금 이러저러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해외봉사를 갔다 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준비하고 가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해외봉사를 가기 전에 준비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먼저 캄보디아에 대해 간접경험하세요. 캄보디아에 대한 책, 해외봉사에 관한 책을 보세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에 캄보디아에 대한 지식이 중요합니다. 가기 전까지 끊임없이 정보습득하세요. 습득한 정보를 혼자 가지고 있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공유하고 더 나아가 친구들에게 내가 해외봉사를 가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친구들에게 후원도 받아보세요. 이런 해외봉사의 가치는 중요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이런 가치에 동참시키세요. 이렇게 해야 어떤 스토리가 생깁니다. 내가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만들기 위해 가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내가 해외봉사를 가는 이유와 어떤 활동을 할 것이며 갔다 와서는 무엇을 할 것인지 설명해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내세요. 이렇게 해야 여러분들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활동을 확대하시기 바랍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간접경험뿐만 아니라 친구나 가족에게 설명, 강의를 하면서 체득화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들로 여러분들의 컨텐츠를 확보에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한 것들, 일기 들을 자가 출판하여 책으로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세요. 그러면 주위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신뢰도와 가치가 높아집니다. 이러한 간접경험과 직접경험을 준비하여 컨텐츠를 확보하세요. 이러한 것들이 여러분의 전문성을 개방시키고 이기적 동기가 되면서 여러분들의 활동에도 관계가 있어요. 결국 해외봉사활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정보습득, 가공, 표현이 중요합니다.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를 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를 어떻게 취득해서 가공하고 가공된 정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태까지 여러분이 배운 정보습득, 가공, 표현을 이번 해외활동을 통해서 활용하세요.
현지에서 현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같이 간 동료들과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동료와의 관계에 따라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어요. 이러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겸손’입니다.
출판사 사정으로 편집 및 인쇄가 지연되다가 드디어 집필한 첫 번째 서적이 나왔다! 아직 서적 검색에 잡히지 않고,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저자용 인쇄본 5권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도 첫 출간물을 자축하며, 공개한다. 에세이 중심의 경험담이 주류이고, 국제자원활동과 관련해서 매뉴얼화하기는 첫 출간물이다. 따라서 우리는 용어 정리부터 국제자원활동의 유형화 작업을 비롯한 국제자원활동의 틀까지도 새롭게 만들어가며 작업을 해야만했다! 역량있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함께 작업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집필하면서 강의에 익숙하기는 하지만, 책을 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라는 것을 느끼며 나의 부족함을 절감해야했다! 보다 많이 유통되어 국제자원활동의 발전에 미약하나마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국제자원활동 매뉴얼>
저자: 이선재외 / 발행: 유네스코한국위원회 / 가격: 12,000원
1장. 국제자원활동의 이해와 실제 – 이선재 (유네스코한국위원회 협력사업본부장 / ODA Watch 실행위원)
2장. 단기 국제자원활동의 기획 – 강종안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청년팀장 / ODA Watch 실무자 단원)
3장. 단기 국제자원활동 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 – 김동훈 (ODA Watch 실무자 단원)
4장. 단기 국제자원활동 사전교육연수 – 한재광 (ODA Watch 사무국장)
5장. 단기 국제자원활동 현장 – 양진아 (메디피스(MediPeace) 팀장)
6장. 사후활동 – 하재웅 (ODA Watch 실무자 단원)
“국제자원활동에도 연구와 학습이 필요하다!”는 바람이 모여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국제자원활동 매뉴얼>로 탄생했습니다.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발행했고, 필진 대부분이 ODA Watch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ODA Watch가 국제자원활동의 다양한 경험치를 바탕으로 풍성한 논의를 해왔기 때문이겠죠. 책에 등장하는 두 가지 대표개념, ‘해외자원봉사(이하 자봉이)’와 ‘국제자원활동(이하 자활이)’의 대화를 엿듣습니다.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보다 행복할까?
자활이: 자봉아, 이 지구는 인간의 것일까?
자봉이: 당연하지. 지구의 모든 자원을 인간이 활용할 수도 있고, 보호할 수도 있으니까.
자활이: 음, 난 조금 다른 생각이야. 인간도 순환하는 우주에너지의 일부라 생각하는데. 인간이 다른 생명체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생태위기는 지금보다 더 심각해질 거야.
자봉이: 그럼 인간이나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단 얘기야? 생명은 피라미드 먹이사슬처럼 먹고 먹히는 관계일 수 밖에
없잖아.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로 강자와 약자가 있고. .
자활이: 그럼 너는 지금 이런 환경이 당연하고 그 속에서 행복하다는 거니?
자봉이: 행복하지, 아프리카 사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인류는 무한히 진보한다?!
자활이: 어떤 게 진짜 행복일까? 네가 가진 행복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잘 봐봐. 지구 규모에 한계가 있는데도 인류의 무한한 진보와 풍요가 가능할까?
자봉이: 당연하지. 기후변화 같은 지금의 난제들도 국제협력과 과학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물론 산업혁명 이후 북반구는 많이 발전했지만 세계 반대편에는 아직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기는 하지.
자활이: 그건 네가 매일 접하는 주류 미디어가 판단한 거 아닐까? 경제적 가치만을 기준으로 한 ‘발전’과 ‘행복’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거지?
자봉이: 이런 최첨단 시대에 아직도 원시적인 생활방식으로 가난하게 사는 건 불행한 거잖아?
발전-자급자족에서 외부의존적 삶으로
자활이: 네가 말하는 ‘세계사 흐름에 따라 ‘비문명인’들도 ‘개화’해야 한다’는 시각은 서구에서 생겼어. 유럽인들이 발을 디디기 전까지 소위 ‘비문명인’들은 풍요로운 자연 속에 가난을 모르고 살았어. 백인들이 ‘비문명인’들을 노예로 삼자 농민들이 땅을 잃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면서 소위 ‘절대빈곤’이 시작된 거야.
자봉이: 서구 열강이 식민지전쟁을 하며 자원을 수탈해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든 건 사실이지만 이제나마 반성하고 도와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구호활동도 하고 원조도 하고 말야.
자활이: 그래.. 그건 맞아. 하지만 가난보다 더 무서운 건 대대로 이어온 전통과 지혜가 무시당하고 삶을 송두리째 외부에 의탁하게 된 거야. 학교나 병원이 필요 없었던 건 공동체 안에서 의료와 교육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서였어. 마을 구성원이라면 아픈 사람에게 간단한 치료를 해줄 수 있었고, 가정에선 삶에 꼭 필요한 기술과 지혜를 학습했어. 하지만 지금의 의료와 교육은 병원과 학교라는 독점기관의 서비스가 되었지.
자봉이: 공동체 안에서의 주먹구구식 교육과 의료? 그건 비과학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잖아.
가난보다 무서운 건 공동체 문화의 소멸
자활이: 그거야말로 문명인들의 편견이야. 영화 <아바타> 봤지? 거기서 인간들은 문명을 거부하는 나비족들을 멍청하다고 비웃었어. 나비족이 얼마나 자연과 융화되어 살고,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독특한 역할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는 관심 없었잖아.
선진국들은 아프리카 정부에 돈을 주고 학교를 지어줘야만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건 ‘돈’이 아닌 거 같아. 깨진 공동체, 사라진 전통문화.. 희망이 없는 건 그들을 결속시켜준 고유문화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웃 간의 유대감, 각 문화의 독특한 전통이 사라지는 대신 모든 나라에 병원과 학교가 생기면 지구인들의 미래는 행복할까?
자봉이: 흐음, 네가 하는 말 나도 모르는 건 아니야. 근데 당장 굶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사라진 고유문화에 대한 안타까움이 무슨 소용이냐구…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으니까, 그 방식을 전해주자는 거지. (책을 집으며) 그럼 <자원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다>, 이 책은 왜 보라는 거야?
국제자원활동-나와 다르니까 배우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다!
자활이: 젊은이들이 ‘국제자원활동’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서로 만나면서, 국가, 민족, 빈부, 문화 간 차이를 허무는 일들이 조금씩 피어나고 있어. 책제목처럼 ‘국제자원활동은 해외자원봉사가 아닌' 거지. 자원봉사가 ‘시혜성’에 중점을 둔 것이라면 자원활동은 지역과 지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중요하게 여기는 거래.
자봉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활이: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총체적 위기의 시대에 젊은이들의 만남은 그나마 이념이나 경쟁의 논리에 묶이지 않아 자유로운 거 같아. 우리의 만남은 올림픽 금은동메달 단상 위에 선 것처럼 선진국, 중진국, 개발도상국 국민으로써의 만남이 아니니까. ‘지구인 대 지구인’의 수평적 만남! 도와주고 깨치게 하려는 생각보다는 나와 다르니까 배우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 그게 이 책의 주제야.
자봉이: 그 말 들으니까 나도 생각난다. 몇 년 전 방글라데시로 자원봉사를 갔던 적이 있어. 학생들이 준비하는 교류프로그램은 ‘풍선아트, 댄스, 태권도’ 등 ‘우리가 일방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지. 가능하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걸로 준비하고, 방글라데시 노래나 전통놀이를 배울 수도 있는데 말야.
지구촌-우리는 모두 친척이다
자활이: 네가 했던 고민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어. 국제자원활동을 기획하고 준비, 사전교육, 현장에서의 실행, 사후활동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성찰과 더불어 축적된 노하우가 담겨 있지.
자봉이: 고마워. 한 번 읽어볼게. 이 책을 통해 국제자원활동이 너와 나 사이의 계단을 허무는, 평평한 땅 위에 서서 서로를 응원하는 만남의 장이 되면 좋겠다.
김중만 작가와 아프리카 사진 다큐를 찍기도 했던 노성희 PD와 메디피스가 공동으로 <마지막 가족사진>이라는 컨셉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한 기획회의를 2010년 1월 25일(월) 메디피스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김중만 사진작가와 아프리카 다큐를 제작할 당시 에이즈를 인한 고아 문제에 대해서 촬영을 하면서 취재했던 아이에게 김중만 작가가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줬는데, 결국 그 아이의 부모가 죽게되어 그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그 가족의 유일한 기록이 되었다. 이러한 사례처럼 각 국가의 이슈가 되고 있는 내용을 가족의 사례와 연결시켜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번 타큐의 설정이기도 했다. (노성희PD 설명)
이러한 컨셉의 의견을 모아줄 KOICA 봉사단원 출신들이 1월 25일 저녁 7시에 메디피스 사무실에서 모였다.
먼저 의견을 낸 것은 파라과이와 에콰도르에서 각각 2년씩 간호분야로 활동을 했던 천지영 단원이 경험담을 나눴다.
남미의 경우도 부유층과 극빈층의 차이가 큰데, 파라과이의 경우 카토릭 문화 때문에 낙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많았다. 특히 인디에나 아이들의 가난 문제가 심각했는데 이들은 받는 것에 너무 익숙했고, 범죄행위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었다.
에콰도로의 경우
지역적 특색이 강한 곳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 곳은 13세의 소녀가 임신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 지역이었다. 특별히 장애인들이 많은 지역도 있었는데, 그곳은 출생하는 아이들의 13%가 장애인일 정도로 장애아 출생 비율이 높았는데, 이 이유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근친상간을 비롯해서 조혼과 마약으로 인한 결과로 생각된다.
특별히 에콰도르에서 만났던 '실비아'라는 여자 아이의 많이 생각나는데, 그 아이는 당시 단원 코워커(업무적 협력자)였던 시장의 보모였는데, 에콰도르에서는 똑똑한 여자 아이를 보모로 일하게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었다. 실비아의 사례가 안타까운 것은 정말 똑똑하고 공부할 의지도 강한 아이인데, 아이를 돌보는 보모일 때문에 도저히 공부나 숙제를 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들의 기질과 특징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야 큰 안타까움이 없는데, 실비아의 사례처럼 기회만 주어지면 미래가 빛날 수 있는 어린이들이 그러한 기회가 박탈되는 것을 볼 때마나 너무 안타깝다.
다음은 베트남과 말라위에서 활동을 했던 박지원 단원의 이야기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아침에 공원에서 흔히 마약하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마약 문제가 심각했다. 이로 인한 매춘이나 범죄문제도 물론 심각했다.
말라위의 경우 사회적 기반시설이 거의 없는 경우인데, 따라서 말라리아, 에이즈, 식수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교도소에서 옥수수를 키우는 프로젝트는 진행했는데, 생활형 범죄가 너무 많아서 그 사회에서는 전과자가 아무런 흠이 되지 않고 그냥 일상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메디피스의 양진아 팀장이 나눈 이야기이다.
몽골의 경우
지하자원이 많아서 광산을 비롯한 개발이 많이 이루어지는데, 민자 개발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닌자 마이닝'이라고 해서 좁은 굴로 들어가서 일을 해야하는 상황 때문에 어린이 노동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더욱이 흙을 파오는 일에서는 화학약품도 많이 사용되고, 땅에는 납성분 등 유해한 물질이 많아서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가자지구 폭격 당시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했는데, 당시 현지인들에게는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전쟁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니였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 거주지역에서는 외국인 조차도 왠지 목을 조여오는 듯한 긴장감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아이들의 꿈은 전사가 되어 복수를 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다음은 캄보디아에서 수의사로 활동했던 송은주 단원과 컴퓨터 교육으로 활동했던 이윤영 단원의 이야기이다.
캄보디아는 킬링필드로 인해서 70대 생이 거의 없다. 그리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지뢰 매설이 심각해서 집 내부 마당에도 지뢰지역 주의문구가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어교육으로 활동했던 임진숙 단원은 쓰레기 하치장에서 10년 정도 무료 급식 및 공장 운영을 하고 있는, 한국인 할아버지 이야기를 나눠주었다.
이디오피아에서 미술교육으로 활동했던 이주연 단원은
극심한 이디오피아의 빈곤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사막에 다른 아프리카 지역처럼 관광자원도 없고, 부족을 떠나 상경을 하는 사람들이 갈 수록 많아지는데, 상경을 해도 주로 하는 일은 구걸과 매춘 정도의 일이다. 기온차가 심해도 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어서 죽는 경우도 허다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리어커를 끌고 매일 왔다갔다하면서 시체를 수거하는 일을 한다.
이날 모임에서는 다양하면서 실제적인 국가들의 사례를 경청할 수가 있었다. 정말 풀리지 않는 지구촌 가난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개도국에서 공통적으로 많이 나왔던 문제가 에이즈와 마약을 비롯한 매춘 문제였다. 모임에서 남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었던 탓에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외국인 남자들의 현지 매춘행각(주로 NGO혹은 유엔 근무자)은 왠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죄인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했다.
조혼, 아프리카의 전쟁 문화로 인해 남자는 전쟁의 의무가 부여되기에 일을 거의 하지 않는 문제, 에이즈 등 남성과 관련된 문제들이 심각하게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중심으로 봉사단 관련 논문을 준비하시는 분과 함께 2010년 1월 6일 인터뷰로 진행했던 내용입니다.
< MDG리포트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 >
Interview 20100106
수: 가장 큰 질문은 어떻게 이런 봉사단 활동을 처음에. 시작하게 됬는지...
재: 제가 주로 강의 많이 하면 이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발표하는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어느 정도 길이로 대답을 듣기 원하시는지 말씀해주시죠?
수: 상관없어요.
재: 제가 왜냐하면 3시간 버전도 있구요. 2시간 버전도 있고, 1시간 버전도 있구요. 15분 버전도 있구요. 다양하거든요. 살짝 고민되는..
수: 시간 되시는 대로.
일단 세계를 경험하자! 세계인으로 살아가기
재: 저는 원래 대학 생활도 경험하기 위해서 간다고 생각을 갖고 있었고, 젊을 때는 또 다양하게 경험해 보는 것 자체에 대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젊을 때는 많이 경험해보고, 그래서 어떤 인식의 틀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한국에 살아도 세계인으로 살고 싶다.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 그런 욕구가 내면적으로 있어서 경험해보자는 생각이 일단 있었고, 경험해보기 위해서는 나가서 배워보자라는 생각이 있었고, 처음에 사실은 미국에 가려고 했죠. 한국사람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에 보면 외국하면 미국이잖아요. 거의. 미국가야돼 미국가야돼. 서류준비하고, 이렇게 막 아는 사람 통해서 이렇게 해가지고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쭉 서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근데, 내가 추구하는 게 내가 배울려고 가는 건데, 꼭 미국가야 배우는 건 아니지 않느냐. 어딜가도 배우는 게 필요하고,
미국에서 결국 몽골 국제기아대책구기로...
그리고 또 처음에는 종교. 종교적인 배경이 작용하기도 했어요. 내가 또 신을 믿는 사람인데, 막연하게 내 맘대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 이건 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한번 내려놓고, 다시 내가 어딜 가야되고, 이런 걸 다시 전반적으로 다시 세팅을 다시 시작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왜 가는지, 뭘 추구하는지, 뭘 배우고 싶은지 그래서 결국 원래는 유럽여행 쪽으로 다시 또 선회해 가지고, 그래서 일본이랑 영국이랑 워크캠프를 하고, 거기 오퍼를 받고 그래서 하고 그 다음에 유럽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 귀국하는 걸로 일정을 잡아놓고 티켓팅도 해놓고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이었다가 어느 순간, 중앙일보에 실린 광고를 통해서 코피온에 지원했는데, 생각지도 않게 합격해서.. 활동 시작했습니다. 끌렸던 것은 종교적 활동도 있었고, 무료급식 등의 현지 활동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국제기아대책기구에서 첫 활동을...
수: 어, 코피온은...
재: 코피온 자체가 뭐냐하면 NGO들 네트워킹하는 거예요.
수: 아, 네트워킹 하는 거예요?
개도국 NGO들의 허브역할을 했던 코피온
재: 네, 네트워킹 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사실은, 요즘 제가 볼 때는 조끔 바뀌어서, 네트워킹을 좀 넘어서고 있는데요, 기관 자체에서 지부 만들고 사무실을 꾸려가고 있는데, 원래 취지는 네트워크랍니다. 지금도 그런 성격은 강하게 남아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뽑아가지고 NGO에 각각 보내주는 거예요. 로컬 NGO들 중심으로 하되 한국NGO도 처음에는 있었거든요 저는 그 때 몽골지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던 거구요.
모든 인간은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는데, 왜? 어떤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굶주림에 죽어 가야만하는가?
그때 사실 처음에는 종교적 배경 때문에 했던 것도 있구요. 어떤 부분이 있었냐면, 일반적으로 보면 내가 전도같은 거 하거나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내가 신을 믿고, 신은 그러니까 창조....세상을 창조했는데. 그러면 내가 믿는 신은 모든 사람을 향한 계획이 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내가 배웠고, 알고 있는데, 근데 어느 순간, 텔레비전을 보면서 태어나자마자 굶주림에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를 창조한 것도 신인데, 왜 죄도 없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고통속에서 죽어가야만 되는가? 에 대한 궁금증이 사실은 저는 있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런 것들을 한번 경험해보면서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몽골에서 시작했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처음에는 노인들 대상으로 무료급식도 하고, 또 국문학 전공이었기 때문에 한국어 강의를 주로 많이 했구요. 많을 때는 7군데까지 강의를 해봤어요. 소속기관, 현지NGO, 개별지역 교회, 학교, 대학, 이렇게 해서... 그런식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서 내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어요. 소위 말해서 선교 사명과 비전, 이런 것들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었구요. 왜냐면 활동하시는 분들이 모두 선교사님들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동기 자체가 저 같은 경우는 종교적 동기가 강해서 갔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대해 만족이 있었구요. 그래서.........결국은 삶의 동기를 무엇으로 봤냐면, 나로 인해서 딴 사람들이 기쁨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런게 정말 행복하다는 것아닌가? 발견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혜택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하다보니까는 무료급식도 해보고 단순히 무료급식은 한계가 있으니까 교육도 시켜봤는데, 그래서 교육해서 사람들 역량계발 하면 될 것 같은데, 이것도 한계가 좀 있는 것 같고, 그래가지고 그...농업개발 프로젝트 같은 것도 진행해서 이 사람들 먹거리도 개선시켜주고, 지도자양성 하튼 뭐 그렇게 해봤는데, 그것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 그래서 이제 그렇게 현장에서 몸부림 치면서, 그들을 좀 사랑할 수 있었고, 또 그들과 마음을 교류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 그들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그런 변화와 그런 계기가 컸던 것 같애요. 그래서 그런 거에 대한 내 안에서의 OO이 컸던 거 같애요. 그래서 그 때 여파로 인해서 갔다와서도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체에 대한 가치에 대한 동의부여가 있었고, 종교적으로도 그런 거에 대한 선교사로서의 어떤 사명의식? 단순히 복음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복음전하는 것 복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종교 자체가 사실 종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람들의 생...먹고 사는 문제를 같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그런 문제, 개발의 문제와 같이 연결시켜서 고민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해서 쭉 활동하다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됬죠. 동기는 어떻게 됬든 종교적 베이스되, 그들의 어떤 삶에 대한 문제나 이런 것도 같이 고민하다 보니까 개발문제와 그들의 어떤 삶의 위로에 대한 부분. 뭐 이런 부분들과 관련해서, 쭉 온거죠. 대략 이해가 되십니까? (6:43)
수: 네. 근데 그게 몇 살. 그러니까.
재: 처음활동 했던 게 저는 군대 가기 전에는 해외활동하고 싶었는데, 걸렸어요. 군대. 제 때만해도 그게 어려웠기 때문에. 서류가 무조건 총장님 싸인받아와. 뭐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총장님이 아무도 안 만나 주는데...군대 갔다와서 첫 번째 목표가 해외나가자. 군대갔다와서 25살에 처음 활동을 시작했구요.
수: 실례지만, 나이가...
재: 올해로 35됬습니다. 적지 않죠?
수: 아...동안이시네요. 전 많아도 서른 하나, 둘 정도 생각했었어요. 10년..정도 됬네요.
재: 올해로 10년 째네요. 10년이면 강산도 한번 변한다는데.
수: 그러면 그 국문과를 나오셨을....국문과를 졸업하셨을 것 아니예요. 그러고 나서 돌아와서 이제, 국문과나 이제 전공에 대한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바뀌신 게 있나요?
재: 어,,많이 바뀌었죠. 솔직히 국문과에 갔었던 이유는 언론 쪽에 관심이 있어서 갔던 거구요. 그런데 갔다오고 나니까 언론 자체에 대한 비전이 약해지고 거의 없어졌어요. 언론보다 더 값지고 중요한 일. 국제활동이라던지 그러면서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비전도 그쪽으로 갖게 되고, 그쪽으로 찾게 되고, 그러면서 갔다와서 계속 경험했어요. 학교 다니면서 그 때 복학해서 3학년이었는데, 매년 나갔어요 방학때마다 나갔어요. 사실은. 그리고 국내에서도 국제행사들도 많이 참여하고 저는 그 다음부터 길이 쭉쭉 열렸던 케이스였어요. 돈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나갈 수 있었고, 뭐 학교에서 지원받거나 뭐 어학연수를 가거나 아니면, 해외봉사단을 가거나 아니면 뭐, 컨퍼런스 참석하거나 국내에 있는 국제 페스티벌 참석하거나. 아니면 무슨 뭐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뭐 통역을 해주거나 뭐 이런 쪽에서 국내에서도 계속 그런 활동을 시작했었고, 방학 때 마다 해외 나갈 수 있을 때는 계속 나가기 시작했고, 그러기 시작했던 거죠. 그래서 결국은 학교 자체도 비전 자체를 그 쪽으로 틀어버리니까 국제활동이나 국제적인 풀이 중요하다. 큰 꿈을 갖고 싶다. 뭔가 이쪽으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게 더 중요하겠다. 국내적 요인도 되게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 지금도 굶어죽는 사람들의 oo문제라던지 그 다음에 진짜 세상적으로 어려움 때문에 눈물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됬으면 좋겠다. 나의 존재가. 그런 꿈을 키웠죠.
수: 그러면, 그 아까 처음에 말씀하실 때 그러셨잖아요. 그 원래부터 세계. 근까 한국에 있지만 세계인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런 생각은 어떻게 언제부터 하게 되셨던 것 같애요?
재: 그 때는 대학 초반부터 저는 제 삶에 대한 고민을 갖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행복인데,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면서 나의 20대는 어떻게 해야되지 나의 대학생활은 어떻게 해야되지. 이런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 때는 잘 모르니까 내가 우선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약간 고민 됬었어요. 제일 좋아하는 그런 연극을 처음에 활동을 시작했었고, 그러고 나서 끝나고 나서는 그건 아닌 것 같앴어요. 그 나는 기쁜데,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무대에서만 서는 건 좋은데, 근데 연습하는 과정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내 감정을 죽이고, 내가 예를 들면 지금 되게 우울해. 근데 막 그 배우가 되는 순간 제일 행복한 모습을 표현해야되는 게 저한텐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그래서 평생 먹고 살기에는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접고, 그 다음에 글쓰고 그런 거 좋아했기 때문에, 아 이쪽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서 그래서 언론 쪽을 관심있게. 사회적 영향도 크고, 역할도 크고, 그래서 했는데, 해외갔다와서 바뀐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 가지는 비전이라는 게 세 번째 가졌던 비전인데요. 그런 과정 속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될까 하는 거 모르는데,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우선은 지경을 넓혀보자, 범위를 넓혀보자. 다양하게 만나고,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그냥 알고 싶었어요. 내 안에 도전정신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 만나기 원했고, 다양한 공부도 하고 싶었고, 공부두요. 원래 그래서 원래 입학을 생명공학으로 했거든요. 전공을 바꿔가지고 국어국문학으로 나는 이쪽으로 올인해야하니까 바꾼거구요. 졸업할 때는 결국 복수전공해서 둘 다 졸업했어요. 그렇게 했었고, 그 다음에 그 외에도 사설 학원, 근까 사설 교육이나 세미나 이런 것도 관심있는 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정치 종교 그 다음에 교육학, 뭐 이런 상담학. 뭐 이런 것들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은 정말 다양하게. 서울 그런 코스가 많으니까 가능한한 좇아다니면서 많이 공부했었고, 동아리 활동도 다양하게 했었고, 그러면서, 그러면서 그 때는 그냥 잘 모르니까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는 사람이었고, 아르바이트 정말 다양하게 했고, 돈 벌기 위해서 한 게 아니고, 경험하고 싶으니까. 공부도 그랬고, 그러면서. 제가 모르니까 그럼 해보자.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떤 그런 세계관 변화 관심. 그리고 갔다온 사람들 괜찮다고 하는데, 나가보라고 하는데. 그러면 사실 마음은 다 있잖아요. 상황이 안되서, 근데 나는 그런 의지를 갖고 준비 한거죠. 그러니까 길이 열리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까는 그리고 젊을 때 이만한 경험치가 없더라구요. 요즘은 소위 말하는 스펙이라고 하는 이유로, 많이 또 논쟁이 있긴 하지만 그 땐 그런 게 없었거든요. 근데 내가 방학 때 뭘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영어 공부, 뭐 잡히지도 않아. 근데, 해외에 나가서 경험해 보면, 그 때 가졌던 꿈, 비전.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준비하는 어떤 준비하는 과정들. 사람들과의 관계, 현지인들과의 어떤 교류. 뭐 이런 게 난 너무 재미있었고, 즐거웠고, 그게 하나의 기쁨이었고. 그런 문화에 대해 접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고, 그런의미에서 자꾸 경험해보자. 모르니까 또 알고 싶으니까. 재미있으니까 그런 동기로 쭉 온 거 같애요.
수: 혹시 해외에서 그런 경험을 하면서. 여러군데를 가셨잖아요. 기억에 남는 거야 당연히 많겠지만 어떤....특정한 사례같은 게 있어요? 아 내가 정말 그냥 전반적으로 느낌이 변하긴 하지만 그거 말고 어떤 계기나 이런 것들이 혹시 있어요?
재: 우선은 가장 경험을 하면서 특히 해외봉사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것 중에 하나는 일단은 해외봉사활동은 어쨌든 텀이 있잖아요. 맥시멈 2년이든 3년이든. 그러면 어쨌든 돌아가야되는 상황이 생기는 거예요. 그게 계속 반복되다보니까 너무 힘들었던 게 뭐냐면, 현지인들이랑 매일 6개월동안 활동하면 친해지잖아요. 근데 난 떠나야되잖아. 그러니까 결국 활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결국은 또 고민되는게 나는 어자피 갈 사람인데, 그러니까 단순히 어떤 책임회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뭔가 더 하고 싶은데, 더 할 수 없는 한계점들이 기간땜에 생기더라구요. 그러고 나서 막상 공항에 가서 마중나가 열심히 수고했다고. 공항은 울음바다 되는 거지. 주저앉고, 막 울고, 너무 아쉽고. 근데, 그게 한번 두 번 할 때는 그냥 너무 미안하고 그랬는데,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되니까 이게 뭔가. 아 이게 정말 정만 주고 떠나는 게 되게 무책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좀 더 이 사람들을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가지만 더 많은 것을 받고 오는데, 배우고 오는게. 그런 이들에게 뭔가 받은 사랑을 또 이들을 위해서 정말 내가 좋아서 마음에 두고 있는 이 사람들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장기 자원봉사 활동. 그런 걸 고민하게 된 거죠. 그러한 의미에서 그래서 공항에서 만남들이나 관계성들이. 그래서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많죠. 우선은 그래서 말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까 그 사람이 한국말을 하든 내가 현지어를 하든. 하지만 오히려 말이 안되기 때문에. 마음 배려라던지 마음 씀씀이가 더 민감해지는 거 같애요. 그리고 그렇게 기억에 남는 사람들이 있어요. 작지만 쪼끄만 마음씀씀이나 이런 것 때문에 정말 나한테 많이 영향을 주는. 사람이.......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거 같애요. 헤어지는 과정 속에서의 아쉬움들.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구요. 그 다음에 또 현지에서, 사례들은 많아요. 현지 활동이나. 이런 것들도, 중요하게 봤던 것 중에 하나가. 어떤 필드에 가면 공동체 활동이나. 이런 활동을 통해서, 그런 제가 공동체 이름은 까먹었는데 거기는 인제, 10명이 오면 10명이 오면 8명은 사역하고 10명은 돈을 벌어요. 돈은 돈 버는 사람이 철저히 돈을 벌고, 돈을 버는 것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어떤 선교활동이든 구제활동이든 사역에 이렇게 쓰는 거예요. 비즈니스 활동은 비즈니스대로 활동을 하는데, 되게 비즈니스철학이 되게 강했고, 그 다음에 사역에 대한 부분도 강했고, 그리고 거기서 인제 교육을 집단교육을 시키니까 홈스쿨링이라던지 그 안에서 교사가 나와서 하고, 또 육아도 같이 하고, 교육문제가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또 이게 국제 네트워크기 때문에. 외국사람들도 다양하고, 인종도 다양하게 있어요. 그래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문화권에서 누릴 수 있는 그리고 거기는 단순하게 가는 게 아니라 한 번 가면 본부에서 몇 년간 지원해주고, 그리고 거기는 뿌리 박고 평생 살 사람들. 가서 지원하는.
수: 그럼 거기도 갔다가 오신거예요?
재: 아니요. 거기는 이제 인터뷰 하고 만나서. 그러니까 굉장히 교육 모델이 될 수 있겠구나. 그런 단체들이 많이 있어요. 어떤 데는 예를 들면 키르기스탄 갔을 때는 거기는 진짜 유목민이기 때문에 몽골에서 많이 봤지만 유목민이기 때문에 버려지는 농토가 많거든요. 하지만 한국은 요즘 해외식량기지 같은 걸 저도 관심있어하는데, 관심만. 근데 거기서는 이제 유목민들이기 때문에 저도 농업 개발 프로젝트 해봐서 알지만, 씨앗도 부족하지만 어떻게 짓는지 모르거든요. 근데 거기는 뿌려만 놔도 수확이 되는.
수: 농토가 되게 비옥한가봐요.
재: 되게 비옥하.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어쨌든 가축을 하잖아요. 유목민들 때문에. 배설을 하죠. 똥을 만들죠. 초지를 먹죠.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떻게 보면 농..그러니까 이게 사실 적당하게 유목민하고, 농민 잘 조화가 되면 되는데, 이 조화가 진짜 어려운 거거든요.
수: 그렇죠. 한쪽에 완전히 치우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재: 네. 그래서 적당히 그것만 해주면, 근데, 그런 데는 진짜 묵은 땅이 그냥 일년에 몇 핵타르, 몇십 핵타르, 몇 백 핵타르까지 가니까. 정말 엄청나거든요. 아예. 그 농대들 많이 있잖아요. 감당이 안되는데, 거기서 집단 거주를 해 가지고, 어, 그런 프로젝트 괜찮겠다. 그러면서 실제로 그들은 버려지는 땅이기 때문에, 우리가 수확을 하고, 한국은 어자피 농토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 자연스럽게 국가간 체결을 해가지고, 만들어져가지고, 융통할 수 있게끔 해주고, 나머지 재료라든지, OO라던지 양육하는 문제도 같이 해주고 빈곤문제 해결되지, 한국의 식량 문제 해결 되지. 교육문제 해결되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의미가 있고 필요하겠단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애요. 단체들이. 그거 외에도...
수: 그러면 다른 사실 직접 참여도 해보셨고, 이것저것 많이 교육활동이나 농업활동이나
재: 예 파견도 해보고 교육도 해보고 프로그램도 짜보고
수: 근데, 그 중에서 가장 관심있으신게 해외봉사단 쪽이신 거예요? 아니면 여러 가지 관심중에 하나이신 거예요?
재: 어, 지금 저는 지금 제 관심은 전반적으로 대외전략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근데 이제 제 관심의 고민은 고민하다보니까 활동하다보니까 어.....필드는 외국에서 활동하는 거 자체는 무리가 가더라구요. 어떤 면에서 무리가 가냐면 첫 번째가, 우선은 나는 어떤 데 들어가면 거기에서 좀 더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훨씬 더 변화를 만들고싶고, 또 내가 생각하는 어떤 이데아적인 사회적 모습?. 그게 어떤 신앙적으로 보면 소위말하는 하나님 나라 완성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세상적으로 보면 내가 만들고 싶은 나름대로의 이데아적 사회적 구성모습이 있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외국에서는 이루기 어렵더라구요. 외국에서는 어쨌든 나는 이방인이고, 근까 외국에서는 개도국도 마찬가지고 마찬가지더라구요. 외국인이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있더라구요. 소수이잖아요. 그 언어에 대한 문제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맥도 제약이 될 수 밖에 없고, 그 한계점들에 대한 벽을 저는 많이 느꼈어요. 언어 문화 인맥, 그 한계점들을 느끼면서,,,,결국 근데 한국은 저한테는 그만큼 편한 곳이었고, 또 그 만큼 제가 갖고 있는 인프라가 생각보다 좋았고, 한국에서는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잘 알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역할들이 많을 꺼라는 생각이 들고, 결국 그래서 내가 필드를 정해야되는데 해외냐 한국이냐. 선진국이냐 개도국이냐 이런 필드를 정할 때, 한국이다. 그 대신 한국에 대해서 관점은 해외에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러다보니까 제도에 관심을 갖다 보니까 제도에 대한 변화. 이런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고, 제도가 중요하다. 내가 정말 현장에서 뛰어가지고 OO명 밥 먹일 꺼, 제도만 잘 바꾸면 100만명도 먹일 수 있구나. 그리고 제도가 너무 안타깝죠. 현장에서 필드에서 경험해보니까 코이카 운영실태도 그렇고, NGO도 아쉬운 점이 많고. 여러 가지 한계점들이 있는데, 이게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현장에서 보다 보니까 답답한 거죠. 그래서 이론적 틀이나 이런 것들에 대한 고민. 관심 갖고 있는거죠. 그 안에서 내 역할이 어떤 건지를 관심 갖고 있는 건데요. 한국에서 그래서 대외전략.에 관심이 많이 있는 거예요. 결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또 간과할 수 없는게 결국은 북한 문제와 더불어서 그..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거구요. 그래서 그 다음 제 관심은 그래서 필드는 한국에서의 역할인데. 한국의 역할이고 한국의 어떤 대외전략에 관심이 있는거구요. 그렇게 관심 많은 중에서도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접근할 것인가. 전반적으로 그래서 한국은 예전에는 소위말하는 예전에는 편승외교를 하다가 이제는 소위말하는 이제, 중립국가. 미들파워국가........가 되야되는데, 그걸 하기 위해서는 소위말하는 이제 소위말해서 소프트파워같은 게 중요해 지고 소위말하는 이제 틈새외교같은 게 중요해지기 때문에 틈새외교 전략적 수단으로써 소위말하는 PKO나 ODA가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수: PKO가 그거죠, 평..
재: 평화군. 평화...평화유지군.
수: 아, 평화유지군.
재: 그래서 그런 활동들이 중요하다고 보는거예요. 그 다음에 소위말하는 소프트파워의 가치를. 문화외교가 중요하고. 그런 여러 가지 포지션 중에서 제가 잡은 건 결국 ODA 인 거죠. 그런 큰 대외 전략 중에서 ODA 파트에 좀 더 관심을 있게 보게 된거고 그 ODA도 다 할 수 없으니까. 그 중에서도 나는 해외봉사단 중요하다고 보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거냐면, 해외봉사단 솔직히 논란이 많죠. 그게 현지에서 도움되냐, 뭐 인정한다. 도움 안된다. 현지에서 그 돈 한국사람 보내려면, 현지 인력들 스텝 키우면 되는데, 왜 보내냐. 하지만 이제는 한국이 ODA 잘 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 인력들 키워야 되는거 아니냐.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들이 필요한 거 아니냐. 그리고 인프라 구축되야 되는데, 인식도 많이 제고되야하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봉사단 사업이 갖고 있는 특정한 포지션이 있다. 봉사단 사업 자체가 갖고 있는. 그래서 그걸 통해서 인력 양성 해야되고. 거기에 대한 가치들을 한국사회에서 공유되야되고. 그런 의미에서 세계시민의식 형성되야 되고, 그런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역할이 필요하고, 세계 사회에서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요소들 때문에 한국해외 봉사단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구요, 그만큼 경험해봤더니 잘 아는 거고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하다보니까 근데 여기에 대한 중요성들이 내가 느끼는 부분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름대로 잘 할 수 있는 거고, 또 좋아하고 그렇기 때문에 어쨌든 제 포지션에서는 해외봉사단 사업자체가 잘 됬고, 효율적으로 됬으면 하는, 지금 그래서 문제점들을 많다고 보는 관점에서, 문제점들을 썼잖아요. 그래서 그걸 이렇게 바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대안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렇게 그래서 관심 갖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모르겠어요. 얼마나 이제,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어쨌든 사실 이쪽 판에서 ODA 마찬가지고, 전반적인 대외전략, 큰 판에서의 상황으로써 큰 맥락으로써의 어떤 ODA 접근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그 맥락으로써 해외봉사단 접근하는 사람 별로 없거든요. 거기에 대한 가치를 담고 싶었는데. 거기에 대한 어설픈 시도들이기도 해요. 이게. 그래서 하고 싶은. 욕심을 더 냈다 그러면, 한국 대외전략 이렇게 바뀌어야 된다. 한국의 대외전략 속에서 공공외교가 중요하다. 왜 중요하냐면.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그러니까 한국의 대외전략 중에서는 소프트파워가 중요하고, 소프트 파워중에서는 문화외교가 뭐가 이렇게 중요한데. 그 중에서 공공외교가 중요한데.
수: ODA에서는.
재: 그렇죠. 그 중에서는 ODA랑 연결이 많이 되 있고. 틈새 외교, 소프트 파워 이런 것들이 다 연결이 되 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의 어떤 해외봉사단 사업을 주목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해외봉사단은 하고 싶은 건데, 거기에 대해서 나름대로 제가 녹여내고 싶은 욕심이었던 거죠.
수: 그렇구나. 아. 처음 봤을 때도, 말이 진짜 빨라서 되게 깜놀했었는데. 그 때 코피온에서.그 날 하얀 양복 있고,
재: 항상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사람이예요.
수: 현장에 가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재: 현장에서요?.......... 문화죠. 아.....인간의 삶이 이렇게 다양할 수도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몽골같은데 가면 정말 하루 일과가 일어나서 양치고, 또 목초지 돌보고 땔감 구하고, 그러고 나서 저녁에 유야무야 마무리하고, 밥하고 이렇게 하면서. 그게 그냥 삶인 거예요.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할수 없는 삶이 현지에서는 존재하는 거죠. 그것만 있는게 아니라 각각의 문화 속에서 있는 거죠. 그니까 소위 말하는 25년동안 하나의 문화권에서만 있다가 정말 다른 언어 다른 민족 다른 환경속에서 사는 게 어떤 것인 지를 그리고 그게. 갖고 있는데, 결국 언어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언어 뿐만 아니라 문화적 있는거죠. 그런 것들을 보면서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 지 배우죠. 그러다 한국에 다시 들어오면, 다시 또 나이가 이렇게 찼네. 어 맞어맞어. 이거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야되는데, 어우씨 나 지금 뭐하고 있지? 이런... 하면서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수: 다양성을 배운다는 게 선배님한테는 어떤 의미였어요?
재: .......그만큼 관점이 넓어지는 거죠. 그 다음에 왜. 꿈이 뭐냐고 물어봤을 때, 사람은 왜 아는 만큼 볼 수 있잖아요. 아는 만큼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는 만큼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우선 많이 알아야되요. 또 많이 봐야되요. 소위 말하는 비전이라고 했을 때, 왜냐면 개도국가면은 애들이 너 꿈이 뭐야? 물어보면은. 몽골에 가면은, 전러치요. 이러거든요. 전러치가 운전수예요. 근데 거기서 운전수. 운전수가 되는 게 꿈이예요. 근데 운전수가 되고 싶은 이유가. 뭐 있어. 돈 잘 벌거든요. 개도국에서는. 그러니까 운전사는 보고, 또 돈 잘 버는 것 같고, 떵떵 거리고 잘 사니까. 그게 꿈인게 당연한거죠. 우리나 하찮게 보죠. 걔네들한텐 그게 꿈일 수 있는 거죠. 그걸 다시 바꿔가지고, 야 그거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아. 아무리 설명해줘도 보여주지 않으면. 아, 이렇게 해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많이 볼 수 있었고,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가질 수 있는 꿈이 그만큼 커질 수 있었고. 좀 더 그런 고민에 대한 걸 할 수 있었던 거구요. 거기에 대한 좀 더 그렇게 선택의 옵션이 많아진거거잖아요. 거기 중에서 난 선택할 수 있게끔 된거고. 물론 상황에 따라서 다르긴 하죠. 그만큼 잘 준비되야지, 그 다음 그 다음, 그다음을 잘 선택할 수 있긴 한데.
수: 해외 봉사단을 가는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는 그런 선택지를 넓힐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거겠네요. 그러면.
재: 그쵸. 그만큼 뭐 저....도 비롯해서. 전 모임 많잖아요. 코피온도 모임도 있을 꺼고. 또 그 기수별 모임도 있을 거고. 또 제가 또 한 성깔하기 때문에 또 하라면 가만히 안 있고, 또 막 떠들어야돼. 이렇게 해야합니다 저렇게 해야합니다. 우리 모임 만들까요? 이렇게해서 했지 않겠습니까? 윗 기수 아랫기수 두루두루 모임이 참 많긴 한데. 이렇게 사람들 만나서 얘기하다가 보면, 확실하게 사람들은 그런 다양성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들을 알죠. 그리고 또 그런 것들에 대한 향수가 있죠. 그래서 대부분은 다 좋은 추억을 가지고 오죠. 동기나 출발점이 그런데, 한국 해외봉사단은 2년이기 때문에, 그리고 국가에서 파견하기 때문에 쫌 성격이 다른 거 같애요. 나머지는 쪼끔은 이제 훨씬 더 거기에 대한 가치와 활동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좋은 거 같구요. 그래서 중요한건 이제 관계성인거 같긴 한데. 아무튼 그래서 그 사람들의 경험들....이런 것들
어, 근데 정확히 질문이 뭐였죠? 하다보니깐.
수: 어, 저도 듣다보니까 까먹었는데. 아, 해외봉사단을 가는 다른 친구들도, 그런 비슷한 그런 선택지를 넓히는 이유. 경험을 진짜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지경을 넓히면 꿈이 달라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변화들이 많이 일어나잖아요.
재: 그쵸. 하지만 상당부분은 현실과 이상에 대한 괴리감이 있는 것 같애요. 우리가 직업 선택할 때 원하는 대로 항상 안 되잖아요. 사실 또 대부분이 현실론을 많이 택하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내가 직장생활 하든, 회계사가 되든 뭘 하든. 그런 경험들이 녹아져서 내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회계사 일을 할지라도, 회사에서 내가 OO실에 근무한다고 할찌라도 그러한 경험들이 내 안에서 중요한 자산으로 남는다고 보는거죠. 단순히 어떤 선택의 길을 넓힌다기 보다는. 자기 삶의 풍요성을 위해서 봉사활동을 선택하는 거. 왜 예술하는 사람들.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면, 그만큼 그거 자체가 어떤 연결된다기 보다는 클래식을 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이해를. 내가 연극을 즐기던지 뮤지컬을 즐길 수 있는. 모르는 사람보다는 거기서 향유할 수 있는 문화가 넓다는 거니까. 마찬가지로 문학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처럼 자신의 어떤 삶의 지경을 넓히는 근까. 삶의 어떤 활동 폭? 그래서 같은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래서 반가운 거예요. 그래서 즐거운 거예요. 또 그런 것들.....이 내 안에 녹아져 있죠.
수: 제가 별로 질문을 정리해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재: 전 정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수: 하하. 역시. 네. 혹시 뭐 또 생각나서, 3시간 짜리 중에 요거 중요한데 빼먹었다. 그런 거 있으면 마지막으로
재: 저는 해외봉사활동을 강의하고 이렇게 할 때도. 핵심은 이제 해외봉사단만 보지 마라. 그냥 1주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6개월 가는 것도 마찬가지고, OO해도 마찬가지고. 자신의 어떤 근본적인 활동에 대한 가치와, 근본적인 어떤 내면 동기. 차원에서 해외봉사단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저는 질문을 많이 받거든요. 해외봉사활동 갈까요, 말까요. 코이카갈까요. NGO갈까요. OO에서 갈까요. 이런 질문들 많이 받거든요. 국내훈련할 때도 만약에 가게 되면,
수: 국내훈련이요?
재: 국내훈련 다 받잖아요. 2주 가더라도 다 받잖아요. 그러니까 가서 얘기하는데, 그럼 가서 나는 어떻게 활동을 해야되지? 단순하게 그냥 가서 잘 활동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자기 인생에 있어서 활동에 대한 의미를 부여를 하고, 내가 근본적으로 내가 왜 가는지. 내가 무엇 원하는지. 뭘 배울 수 있는지. 에 대한 그 고민들. 또 정말 중요한 건. 그래서 장래에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직장 다닐 수 있는데. 말 그대로 단순하게. 나는 그냥 단순하게 경영실에서 근무하는 게 꿈인데, 삼성 들어가는 게 꿈인데. 근데 그러면 거기에 대한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걸 다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그럼 그렇다 그러면 자기 삶에 대한 고민 안하냐. 그렇진 않거든요. 사람은 다 돈만 있다고 해서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가치에 대한 추구가 내면적으로 다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에 대한 가치나 지향점이 어디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그런 삶의 큰 틀에서 어떤 자신의 삶의. 내가 왜 살고, 뭘 추구하고 사는 지에 대한 고민속에서 해외봉사단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야지 더 효율적이고. 그래야지 자기가 더 더 많이 배울 수 있다, 그래야지 협력도 잘 될 수 있다, 그래야지 주변사람들과의 관계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잘. 가능해서 잘 맞는 다고 그러면, 자신의 역량개발 차원에서도 스펙, 뭐 얘기 많이하는데, 단순히 저는 스펙 무시하지 못해요. 얘긴하지 않지만. 스펙 정말 제대로된 스펙,,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하게 그냥 한 줄 긋는 것이 아니라. 왜 내가 지원했, 어떤 목표땜에 지원했고, 그렇게 해서 뭘 배웠고, 내가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데, 이게 필요하다. 그런 식의 스펙이면 얼마나 좋으냐. 또 그게 당신한테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 그게 나한테도 도움이 된다. 이쪽 업계에 있는 사람으로써 수기관리(?) 필요하다. 뭐 이런 얘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요런 상황에서 이해되는 거 같...
수: 전반적인, 아주 대강. 이겠죠. 한 10년간의 그런 경험을 뭐 몇 분 동안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너무 경험이 많으면 솔직히 어, 여기서 이 얘길 하면 저 경험이 서운하고,
재: 그쵸,
수: 저 얘길 하면 또 저 경험이 서운한 경우들이 참 있을 것 같애요.
재: 그쵸. 그렇잖아요. 어떤 사람한테 2주 동안 예를 들면, 뭐 필리핀 갔다왔다, 필리핀 어때? 할 얘기 무지 많거든요. 대따 많아요. 근데 필리핀 사는 사람한테 물으면, 한국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사람들한테 한국어때? 얘기 못하거든요. 한국사람이 한국을 어떻게 이해하지. 어떻게 뭐라고 얘기해야하지? 이거거든요. 거기 예를 들면, 10년살았던 사람들, 중국사람들 중국에서 활동하는 분들한테 중국어때요? 10년 살수록 얘기 잘 못해요. 확 뭐 어떻게 뭘 얘기하지. 이 주, 일주일 갔다온 사람한테 물어보면, 할 얘기 진짜 많거든요. 중국은 이래이래 이건은 이래이래 이렇고 이렇고 저렇고, 몽골도 마찬가지예요. 겨울에 왔던 사람들은 다 울고 가거든요. 추워가지고, 이거 저 뭐 영하 15도? 거기는 30도까지 떨어지거든요. 나가면 이렇게 고드름 생기거든요 여기.
수: 진짜요?
재: 네 진짜 여기 고드름생겨요. 갔다오면 눈이 하얘지거든요. 왜 하얘지나 싶었는데, 눈만 내놓고 가니까 입김이 이렇게 올라와요. 입김이 이렇게 얼어요. 이게 좀 심해지면 고드름 이렇게 얼어요.
수: 아, 아, 진짜 웃기겠다. 아 그래서 추운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가 이렇게 하얗구나. 사진 같은데 보면.
재: 그게 근데 웃긴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 다 울어요. 단기팀 몽골에 있을 때 단기팀 왔던 사람들은 여자분들은 열에 아홉은 다 울었어요.
수: 너무..
재: 이게 춥,거든요. 추우니까 이게 어느 순간 지나면 고통스러워요. 그리고 아파요. 몸이 아파요. 그래서 아파서 울어요. 아파서 이렇게 우는구나. 근데 어떤 건지 저는 실질적으로 보게,, 되죠. 그니까 이게 사실은 사람들이 말하는 순수성인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것처럼, 확실히 그건 특이한 경험들이나 고생했던 경험이기 때문에 더 자신이 값지게 느끼는 것 같애요. 어..더...이렇게 자신의 어떤 내면적 성숙을 통해서 이루어진거 같구요. 저는 교육학을 얘기할 때, 저는 김영호 박,,, 박영호 박사님. 김영호 박사님 그....미국에서 교육 차관보하셨던 그 분의 교육학 이론이 있는데요. 그분이 교육학을 보통 세 가지로 얘기하거든요. 단순히 그냥 교육을 그냥 지성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왜 더 세분화된 것도 있는데. 그러니까 지성, 그 다음에 인, 그 다음에 심성,, 그러니까 지력 심력 체력이 중요하다. 교육이라고 하면 3요소가 필요한데, 단순히 우리가 지력만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능력, 심력도 되게 중요하다. 그리고 체력도 되게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지력적인 부분인데, 지력도 사실 학교에서 할 수 있게 아니예요. 별써 인터넷 시대부터 시작해서 책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과연 학교가 추구해야하는게 무엇인가. 봉사단 같은 경우에 심력을 개발시키는데 너무 도움이 되죠. 현지사람들과 부딪치고, 고생도 해보고,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어려움도 겪어보고, 외로움과의 싸움, 현지의 환경에 대한 싸움. 추위면 추위. 더위면 더위. 그 다음에 언어로 대한 어려움으로 인한 싸움, 문화의 격차에 대한 싸움. 뭐 그런 것들. 결국은 사람이라는 게 뭐가 제일 힘들겠어요. 사람들 물어보면, 다 이렇게 얘기한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다 얘기하는 거잖아요. 박찬욱감독도, 자기자신과의 싸움이요. 해외봉사단 뭐가 제일 힘들었어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저도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자기자신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워요. 다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처럼 그런 자기자신과의 싸움에서 소위 말해서 심력을 기르는데 있어서는 그만큼 예방주사와 트레이닝의 과정으로써는 참 의미가 있고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도 사실 그런 경험들이 또 지금 나를 만들어 가는 거고. 도움이 된다고 보는 거죠.
재: 저는 그래서 항상 강의하다보면, 그 많이 고민하는게, 이론을 먼저 공부할까요, 현장으로 갈까요. 그런 질문 많이 하잖아요. 저도 고민 많이 했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다 이론을 먼저 선택해요. 왜냐하면 안정빵이거든요. 학력만큼 그만큼 스펙 좋은 게 어딨어요. 그만큼 안정적으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심성 자체가 안정성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애요. 근데 저는......현장 먼저 했었고, 현장 먼저 해야된다고 생각을 해요. 필요하면 공부하고. 그런게 확실히 느꼈던 게, 별로 상관없는 국어국문학 공부하면서도, 이거 왜 공부하지 싶었는데, 현장에서 외국 사람들한테 국어를 가르치다 보니까 음운론, 뭐 경구개음, O구개음, 가니까 그게 필요하거든요. 우리는 외국사람들 ‘의’ 발음 잘 못하거든요 의 해보세요. 의! 자 보세요. 의! 혀 모양으로 할 수 없거든요. 이 해보세요. 아 이 되네요. 그럼 혀를 뒤로 땡기세요. 혀를 더 낮추세요. 이게 음운론 이론에 있거든요. 이게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아 이걸 왜 공부해 아 짜증나 아 이거, 재미없어 그랬는데 현장에서 가서 가르치다보니까, 외국사람들한테 설명을 해야되는 거예요. 합리적으로 이해를 해야되거든요. 모국어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국어가 최. 좋게든요. 아 이게 필요하구나. 영어만 공부할 때는 의미론이 어떤 건지 잘 몰랐어요. 언어 의미론이 다 다른 거구나. 우리가 괜찮아. 이거하고 That's ok, Never Mind, 이거 다 괜찮아. welcome 이렇게 하지만 이게 영어로 보면 달라. 정말 차이가 나요. 근데 “괜찮아” 하고 몽골어에 있는 “주드르” 라는 의미하고 정말 똑같애요. 그 의미적으로 보면 정말 똑같애요. 그 의미적으로 딱보면, 매치가 딱 되요. 쪼끔 다른 게 있지만 거의 비슷해요. 의미의 구성자체가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구나. 또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 자체가 이런 거구나. 똑같은 영어라 해도, 의미를 똑같이 전달해도 그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게 달라요,
수: 그렇죠. 맞아요.
재: 상황적 논리가, 단순히 상황적 논리들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생기는 느낌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의미론을 배울 때 느낌이 달라져요. 그러니까 질문해도 달라지고, 왜 학문을 공부할 때 그래서 복귀한 다음에 복학한 다음에 국문학 공부할 때도 저는 공부 OOO 안하죠. 재미가 있고, 어떻게 관점이 생겼고 그러니까 내 관점으로 질문하니까 교수님들도 놀라죠. 어 너 그거 어떻게 알아. 어 이거 강의하다 보니까 이렇던데요. 내 관점이 생기고, 그러니까 쌓이는 게 달라져. 공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문법도 마찬가지예요. 외국사람들한테 은는이가 계속 설명해봐요. 못하거든요. 문법에 다 있어요 기본적으로. 이걸 알아야지 설명할 수 있거든요. 이 사람들은 이걸 외울 수 밖에 없거든요. 우리가 왜 영어 To부정사 외우잖아요. 그러니까 그들도 외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일정부분 외울 수 밖에 없어요. 그럼 뭘 외워야 될까요? 몰라요. 전공하지 않으면. 설명을 해보니까 야, 이게 이래서 필요한 거구나. 내가 이것만 좀 더 배웠다면, 이 사람들을 이렇게 좀 더 아,, 할 수 있었을 텐데...,안타깝다. 했었죠. 마찬가지예요. ODA 같은 경우도, 뭐 할 말 무수히 많죠. 효과성 높여야 되고, 오너십 중요하고, 말은 유수같이 다 말할 수 있죠. 하지만 관점이 중요한 거예요. 물론 관점을 가지고, 정말 그래서 니 말이 많냐. 증명할 수는 없어요. 누구도 그걸 증명할 순 없어요. 말빨 누가 다 먹히냐. 현장은 이렇다. ODA 자체가 현장을 위한 건데, 현장에 이런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거 해야된다. 이거 얘기하는 거하고, 아, 이런 전공하고 학위따고 이렇게 해야되요. 개뿔 우리한테 안 맞어. 마찬가지로 그런 의미에서 현장에 대한 중요성, 그리고 현장......에 대한 경험에 대한 가치. 거기에 따라서 내 입지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정말 국제개발 협력이든 뭐 국제활동이든. 뭔가 좀 더 자신의 주관 자체가 좀 더 그.....들에 대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그 다음에 현장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좀더 포함되어 있다면, 그들의 삶을 모르면 그걸 알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거기에 대한 진정성도 없고 사실 하다보면 좋은 직업이기 때문에 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아요. 주변에 그런 사람들 많잖아요. OO이 중요한 게 아니라 뭐, 코이카에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EDCF 들어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가치를 두고 살 것인지...가 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거 가져야지 행복해지지 않을까.....
자, 행복해지자. 와~~그러면서 좋잖아요. 사는 게 아니잖아요. 저는 그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행복해집시다. 행복해지려면 이런 건 필요하지 않을까. 저는 이렇게 살아보니까 이렇더라구요. 제가...다른 봉사단 해봤는데요. 해봤는데요. 근데, 결국은 행복이더라구요. 이렇게 하니까 더 행복해지던데요. 여러분도 행복해지세요. 결국 이렇게 결론을 맺게 되더라구요. 저는 이런 생각 갖고 있어요. 그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좀 더 가까워 지기위해서 중요한게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실제로 해요. 그래서 초등학생한테도 필요하고, 대학생들한테도 필요하고 대학생들의 고민이 중요한거죠. 그 사람들한테 맞춰서 얘기해주죠. 대학생들은 경력개발 역량개발 중요하다고 맞춰서 얘기해주고, 일반학생들은 그런 거 잘 안들어오니까 대학생활과 해외봉사단 연결되냐. 안되지. 그러니까 역량개발 해야지. 뭐 이러면서 왜 어떻게 공부해야되고 또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고, 경험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밖에 없잖아요. 내가 해봤더니 이렇다 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교수님 승인이 난 후로도 도저히 밖으로 내놓기가 어려워서 수정에 수정을 했지만, 계속 봐도 어설픈 부분이 많네요! 보고서가 아닌 연구 논문을 만들기 어설프게 공공외교라는 화두를 집어 넣었는데, 역시나 어설픕니다. ^^;;그래도 관련된 분들께는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공유합니다.
Ⅰ. 서론 ……………………………………………………………… 1
A 연구의 목적 ……………………………………………………… 2
B 선행 연구 검토 ………………………………………………… 7
C 연구의 범위와 방법 ……………………………………………… 8
Ⅱ. 이론적 배경 ……………………………………………………… 10
A 관료형 외교에서 공공외교로의 변화 ………………………… 10
B 공공외교 측면으로서의 해외봉사단 사업과 운영 현황 ……… 11
C 공급자 중심의 운영에 다른 문제점 …………………………… 16
(1) 낮은 인지도 …………………………………………………… 17
(2) 미흡한 활동 경험의 공유 …………………………………… 19
(3) 효율적인 지원체계 부족 …………………………………… 21
D 수요자 중심의 운영 전략 ; 블로그의 개념과 특징 …………… 22
(1) 블로그의 개념과 발전 ……………………………………… 22
(2) 블로그의 특징 ……………………………………………… 25
Ⅲ. 단원들의 블로그 이용현황과 활용의지에 대한 설문조사 …… 36
A 조사 절차 및 분석 방법 ………………………………………… 36
(1) 설문 목적 …………………………………………………… 36
(2) 조사 대상 및 절차 ………………………………………… 36
(3) 설문 응답자의 특성 ………………………………………… 37
(4) 자료 처리 및 분석 방법 …………………………………… 39
B 분석 결과 ……………………………………………………… 39
(1) 단원들의 블로그 이용현황 ……………………………… 39
(2) 해외봉사단 검색 경험 및 블로그 학습경험 …………… 40
(3) 단원들의 블로그 활용의지 …………………………… 42
Ⅳ. 해외봉사단 사업에서 블로그 활용 방안 …………………… 45
A 블로그 활용의 목적 ………………………………………… 45
(1) 사업의 홍보 인식 제고 효과 …………………………… 45
(2) 단원들의 개인 역량 강화 ……………………………… 47
(3) 봉사단 사업부의 업무 효율증대 ……………………… 48
B 블로그 운영 방식 …………………………………………… 48
(1) 단계별 점진적 도입 …………………………………… 49
(2) 자발적 운영과 지원조직 체계 ………………………… 50
Ⅴ. 결론 및 제언 ……………………………………………… 53
참고 문헌 ……………………………………………………… 56
부록 ; 설문지 …………………………………………………… 62
국문 초록
공공외교 전략으로서의 블로그 활용방안 연구
한국해외봉사단 운영방안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는 정보화 사회의 발전과 급격한 세계화 그리고 다양한 비정부 기구들의 성장에 따른 민주화의 발전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따라서 외교 전략은 기존 공급자 중심의 관료형 외교에서 수요자 중심의 공공외교로 중요도가 변화하고 있다. 공공외교는 주로 공개된 외교를 지향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며 대중의 참여외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한국해외봉사단 사업과 연관성이 깊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해외봉사단 사업은 대표적인 국민 참여형 공적개발원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이 되어 왔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공급자 중심으로 운영되어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블로그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한국해외봉사단 사업은 모집과 선발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한 문제의 원인은 낮은 인지도와 귀국 후 지원 체계 미흡 그리고, 비효율적인 운영체계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사업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관점에서 블로그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온라인에서 봉사단 사업의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블로그 활용이다. 봉사단 사업의 핵심 참여 계층인 청년층에게 익숙한 온라인 홍보를 강화하고, 검색을 통한 지속적인 노출효과를 통해서 사업에 대한 인식층을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둘째 개인의 역량개발 차원에서의 블로그 활용이다. 개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증명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블로그가 주목을 받으면서 취업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또한 블로그를 통해서 축적된 가치는 자산으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이를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이 개발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블로그가 가진 지식경영 측면에서의 활용이다. 블로그가 가진 RSS기능과 집단지성을 활용해서 정보를 공유하며 소통을 강화해 나간다면 봉사단 사업 업무의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게 된다.
블로그가 봉사단 사업에 활용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검증을 통해서 점진적 단계로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작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서 부정적 정보의 파급을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모든 운영의 원칙은 자발성에 기반을 두되, 블로그 활동의 지속적인 동기 부여를 위한 운영자 임명과 활동에 대한 유인책(incentive) 마련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2009년 8차 국내 훈련 중인 예비 봉사단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통해 본 연구에서는 설문을 통해서 단원들의 블로그 활동이 미약하고 이에 대한 학습 경험도 부족하나, 향후 활용의지는 강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봉사단 사업에서 적극적인 블로그의 활용이 요구되고 있다.
<소박하신 구영배 G마켓 대표이사>
옷 차림세나 말씀하시는 것이 너무 소박하게 느껴졌다.
인도 여성과 결혼하셨다는 이야기도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했다.
머리털 나고 처음 참석하는 기업 후원의 밤
왠 기업 후원의 밤? NGO들이야 후원 모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항시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후원의 밤 행사인데,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무슨 후원의 밤 행사냐구요? 저 역시 수많은 NGO들 후원의 밤 행사를 참석해 보았지만, 기업에서하는 후원의 밤 행사는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해외봉사단 프로그램과의 인연으로 만난 G마켓
G마켓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네팔, 캄보디아, 인도, 베트남 등에서 활동하는 해외봉사단원을 파견해오고 있다. 현재까지 11기로 200여 명이 넘은 청년들이 참여했는데, 난 Copion에서 파견하는 G마켓 해외봉사단원들의 국내 훈련 교육 강사로 활동하게 되면서 인연을 만들어 갔다.
<G마켓과 Copion이 함께 파견하는 해외봉사단 10기 국내 교육의 모습>
미국발 금융위기 때에도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했던 G마켓의 진정성에 놀라다.
지금이야 사회공헌 활동이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아서 어느 기업이나 하는 활동이 되었으나, 그 진정성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사람도 어려울 때 일수록 그 속성을 보다 정확히 알 수 있지 않나? 지난 미국발 금융위기 때를 생각하보면, 기업들 사회공헌 활동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 대학내일 신문사를 통해서 여러 활동에 관여하면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의 다양한 패턴을 볼 수 있었는데, 놀라운 것은 기업의 수익과 상관없이 모두가 사회공헌 활동을 줄이고 있었던 작년 말부터 올 초에도 G마켓은 항상 그 자리에서 자신들이 추진하던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G마켓의 사회공헌활동에는 그들만의 경영철학이 녹아져 있다.
G마켓의 인터넷 플렛폼을 통해서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시키는 전자 상거래 서비스이다.(매출 4조에 이를 만큼 놀라운 성장을 했다) 자신의 역할을 거래의 주최자가 아니라 매개자로서의 역할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 방식은 기업의 사회적 공헌활동에서도 같은 철학으로 활용된다. G마켓을 자신들이 직접 후원활동을 진행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여러가지 약자들의 필요로를 채우고 있는 비영리기관들을 지원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G마켓을 상품을 연결시키 듯 NGO와 사회적 약자들의 매개역할을 훌륭히 하고 있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를 도와 UN 아동권리협약 홍보를 돕고, 자원활동가들을 지원해서 메이커 위시와 함께 난치병 어린이들(84명)의 소원을 들어준다. 해외에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하기 원하는 대학생들을 선발해서 해외봉사활동을 보내는 등 모두 사회공헌의 주최자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섬김의 사회적 공헌으로 NGO실문자들은 감동했다.
일반적으로 NGO들이 기업이나 정부로부터 후원 혹은 지원금을 받으면, 업무관계에 따라 '갑(donor)'과 '을(acceptor)'의 관계를 경험하게 된다. NGO들의 입장에서는 후원기관의 입장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그러한 관계에 따라서 심할 정도로 거들먹 거리는 후원기관들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G마켓은 달랐다!! NGO들을 대하는 것도 중요한 고객을 대하듯이 최대한 겸손하게 상대방(NGO)의 사업 실행에 최대한 협조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었다.
이날 후원의 밤 행사의 주인공은 NGO실무자들이었다.
이 날 후원의 밤 행사에서도 기존의 기관들이라면 언론에 집중하며 NGO들은 구색 맞추는 정도로의 역할을 하는데, G마켓의 행사는 달랐다. G마켓의 사회공헌 활동에 관여했던 다양한 기관들을 초청해서 함께 그러한 활동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대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그간 이룬 업적을 나누며 감사하고, 그러한 업적은 단순히 G마켓의 노력이 아니라 NGO들의 활동 때문에 가능했다고 표현하면서 그 주최자들이 즐길 수 있는 여흥을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식사도 공연도 기념품도 가능하면 최선으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소비자들에 대한 믿음, 그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다른 여러가지 상황들을 의식하기 보다 지속적으로 이처럼 사회공헌에 대한 자신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러한 진정성이면 소비자들도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토록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거래마다 100원씩 모았던 금액이 드디어 100억을 만들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결과이고, 이와 같은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기업이 한국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기업을 운영한다면 이들처럼 해야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G마켓의 경영철학에 감사하고 싶다.
메일을 통해서 상담한 내용인데, 다른 분들께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개인정보를 삭제하고 공유합니다.
<한국대학생정치외교연구회 동국대 국제활동 강연 모습>
안녕하세요. 어제 저녁에 동국대에서 강연 들었던 000 이라고 합니다. 00대학교 경영학부 1학년에 재학중이구요. 강연 때 하신 한마디 한마디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아 와닿았습니다. 어떤 고민이든 한달을 넘기지 말라고 하셨죠? 제가 현재 당면한 고민을 해결해주실분을 만난것 같아 너무 기쁩니다.
--- 중 략----
이런 과정을 거쳐 외교관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략) 무엇보다도 제가 원하는 일입니다. 방학때 혼란스러울때 반기문 UN사무총장님께서 쓰신 책을 보았습니다. 그분처럼 외교관이 되어 우리나라를 위해 일을하고, 나아가 저 자신이 세계인이 되어 모두가 잘 사는 지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저의 비전이자 꿈입니다. 사무총장님처럼 외교관일을 하다 국제기구로 진출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리고 외무고시 공부를 하기전에 장기 해외봉사를 가고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흔히 단기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처럼못사는 사람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는 데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 손에 의해 무언가 바뀌어져 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 중 략 ---
외교관이 되면 끝없이 할것이 봉사활동인데 지금 부터 뭐하러 하냐는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강사님이 강연에서 말씀하신대로 현실적인것, 안정적인 생활과 risk taking 사이에서 어느 쪽이 제 자신에게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중 략 ---
봉사활동 얘기로 돌아가면, 봉사활동을 가고싶어서 여러가지로 알아봤는데 봉사활동은 마음만으로 갈 수 있는게 아니더군요. 우선 선발절차도 까다로운데 중학교때 몇번, 대학교와서는 봉사활동 경험이 없는 제가 서류전형은 통과할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등록금을 내고 가야 하는 상황에 봉사활동 비용까지 생각하면 그 비용은 만만치 않더군요. 가고는 싶은데 갈수 있는 처지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다 선발될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또 1학년이 끝난 지금이 해외봉사활동을 가는데에 적당한 시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가지더, 해외 봉사활동을 가기전에 어떤 것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은 여기까지구요. 요약하면, 첫번째는 저에게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과연진정으로 하고싶은 일인지, 제게 맞는 일인지 혼란스럽구요. 두번째는 해외봉사활동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선발이 되며,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궁금합니다. 지금 너무 혼란한 저에게 빛이 되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하구요.
안녕하세요? 000 님!! 반갑습니다.
강의가 어려가지 면에서 부족했을텐데, 귀담아 들어주시고 이렇게 깊은 고민까지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간단히 얘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군요^^ 질문에 답변부터하면-
우선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대해서
상식적으로 외교관이 되려면, 외시를 봐야겠죠! 그러나 전 직장(외교부)보다는 직업(환경/경제/교육/봉사단 등)에 소명을 두고 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외교관이 되는 것보다 외교관이 되어서 무엇을 하려고하는가가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도 많은 외교관을 만나봤는데 정말 사명으로 일하는 외교관을 만나면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질 정도로 감사하게 되지만, 좋은 직업이기 때문에 일하는 외교관을 만나면 함께 인사하고 얘기는 나누지만 '역시 권위적인 외교부'라는 느낌이 받고 빨리 외교부 시스템이 개혁되길 바라게 됩니다.
첫째 자신의 전문성을 발견하고 그 일에 매진하십시오!
지난 정부 때도 외시를 폐지하는 방안이 논의된 바가 있습니다. 지난 정부 때 힘이 약해서 끝까지 밀어 붙이지 못했는데요. 향후 한국 사회도 권위주위가 많이 변화되고,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적합한 인재를 찾기위한 방안으로 고시는점차 없어질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사시, 행시, 외시 중에서 외시가 가장 먼저 없어지리라고 보았는데, 예상 외로 사시가 가장 먼저 바뀌게 되었군요! 향후 외시, 행시도 없어지고 보다 다원화된 채용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한 변화는 벌써 일어나고 있구요. 봉사단 출신의 선배들도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영사 시스템의 경우 기존의 외시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서 정치권에서도 압박이 상당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핵심은 외시가 아니라도 국제활동의 길은 열려 있고 자신의 전문성만을 추구한다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외시로 들어가도 내부에서 자신의 전문성에 대한 고민과 자신의 영역을 위한 치열한 노력을 해야만하구요! 다양한 영역이 있습니다. 경제학이 활동 입지가 넓은 편이고, 경영학도 외부 분야가 전문화되고 있으며, 환경 / 여성 / 개발 / 공학적 접근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제게 물어보시면 외시에 투자하기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에 투자하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해외봉사단 참여 방법.
현재 1학년이시면, 바로 장기 봉사단원에 지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또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구요! 우선 단기 활동에 지원해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논문을 제출하고 일상으로 복귀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강의'입니다. (요즘은 거의 매일)
어제는 동국대학교에서 진행된 한국대학생정치외교연구회의 "국제기구를 꿈꾸는 그대들이여, 일어나라 그리고 깨어나라!"라는 주제로 강연을 맡아서 약 한 시간 반 정도 강의를 하고 왔습니다.
김정태 홍보관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자꾸 국제기구 중심의 설명회 같은 것은 지양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활동에 관한 역량개발을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김정태 홍보관이 먼저 하는 강의여서 연속선 상에서 맞춰서 진행을 했습니다.
강의의 핵심은 자신이 왜 국제활동을 하려는지 동기를 정검하고, 자신을 찾아찾자! 였습니다.
강의 요청에 충실하기 위해서 국제활동의 역량 개발을 위해서 과연 해외봉사활동이 필요한지? 어떤 유익이 있는지 등을 나눴습니다.
약 8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을 했던 것 같은데, 너무나 열정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끝나고도 30분 이상 개인적인 질문들을 받아야했고, 몇 몇 직접 피드백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 분에게 받았던 문제를 나눕니다.
"오늘 좋은 강연 감사합니다. 사실 해외봉사는 너무 멀게 느껴졌는데, 그냥 개인적인 성장에도 필요할꺼라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010-5771-****
"선망하는 김정태 선생님, 하재웅 선생님. 전 오늘 동국대 강연에 참가한 학생입니다. 오늘 선생님 두 분의 만남이 등돌아서면 남이 되기엔 제 너무너무 소중하고 값진 인연이기에 이대로 그냥 스처가버리면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매시지를 보냅니다. 항해(shiping)와 자연환경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용사 '강00'입니다. 비롯 지금 이제 막 나오려고 껍질을 콕콕 쪼고 있는 새끼새이지만, 제 이름 석자와 얼굴, 꼭 기억해주십시오. 두 분께 동시에 보냄은 두 분의 강의가 정말 우위를 가릴바 없이 제겐 고영양분이 되었고, 두 분다께 기억되고 싶은 욕심에 감히 무례함을 범합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 훗날 두 분과 국제무대에서 만날날을 그리며, 오늘 보석같은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열심히 도약해 나가겠습니다..(생략).." 010-3134-****
참으로 감사한 피드백이었고, 강의 준비와 진행으로 지친 마음을 녹여주는 고백이었다.
더욱 감사한 것은 개인적으로 복음을 나누기 위해서 제작한 전도용 명함이 많이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강의할 수 있는 이유. 그리고 강의를 하는 목적도 사실 핵심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인 마지막에 명함을 나누줌으로 인해서 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숙명여대 아태여성정보통신원은 KOICA(한국국제협력단)에서 주관하는 "2009 개발협력 인지강화 프로그램 사업" (세부 사업명: 국제개발협력 교과목 개설사업)에 선정되어 2009년도 2학기 학부생 교양일반 과목으로 '국제개발협력 이론과 사례' 교과목을 개설했네요! 강의들이 국내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꽤 알찹니다!
참고 하시길
- 다 음 -
* 강의일시: 2009년 12월 4일(금) 오후 4시~5시
* 장소: 숙명여자대학교 명신관 418호
* 강의주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로의 성장 경로 및 준비방안-KOICA 해외봉사단원 사례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준비방안으로서의 해외봉사
* 국제개발협력 전문가 뽀개기
1. 삶의 가치(철학)에 대한 고민
왜 국제개발협력활동가가 되려고 하려는가? 좋은 직업? 착한 직업? 다양한 해외 출장?
2.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로 준비되기.
어학연수를 거처 유학은 필수? 어디에서 인턴십을 하면 좋을까?
해외봉사 헐~ 2년이나? 1년짜리라도 갈까?
3. 4학년이 갖게 되는 고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과 취업(혹은 활동)을 하는 것 사이에서?
현장 ⇒ 이론 or 이론 ⇒ 현장
4.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는 좁은 문이다.
좁은 문턱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현실과 이상 사이 ^^;;
* 해외봉사활동 유형
▶ 기간에 따른 해외봉사활동
단기(한 달 이내) vs 중장기(4개월에서 2년)
▶ 기관에 따른 활동(단기)
ㆍ 대학 : 홍익대의 경우 2007년에 360명 파견. 대학사회봉사협의회를 통해 3,300여명.
ㆍ 정부(공공기관) : 2007년 약 1,700명 파견.
ㆍ 국제개발NGO(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국제기아대책기구, 코피언) : 약 4,300명
ㆍ 기업 : Happy Move 글로벌청년봉사단(현대기아), SKT Sunny, 동북아대장정(교보)
ㆍ 종교단체(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 통계가 안 됨.
* 해외봉사활동 정보
단기 해외봉사활동정보
http://cafe.naver.com/athensga http://cafe.daum.net/unitednations http://www.mizy.net/
장기 해외봉사활동정보
http://cafe.naver.com/youngdabang
주로 2년 동안 40여개의 개발도상국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채류와 관련된 모든 비용및 서류는 정부에서 지원해준다. 파견 분야는 교육, 기술협력, 지역개발 등 다양하다.
2. NGO 해외봉사단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을 통해서 각 국제개발협력 NGO 기관에 파견되는 프로그램으로 활동기간은 일반적으로 1년이다. 모집 및 선발은 각 국제개발협력 NGO들을 통해서 진행되므로 각 개별 단체들의 공지를 통해서 확인해야한다. 파견 기관으로는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어린이재단,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지구촌공생회 등이 있다.
‘
하재웅 ’씨는 세계청년봉사단(KOPION)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의 기관들을 통해 해외봉사를 여러 차례 다녀온 ODA
Watch 2기 청년 단원입니다. 하재웅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현재 한국의 해외봉사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서 들어보았습니다.
1.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7
년 전 세계청년봉사단을 통해서 몽골에 있는 국제기아대책기구(KFHI)에서 활동을 했었고, 이후 몇몇 기관을 통해 동남아나
중앙아시아에서 조금씩 활동을 하다가 작년에는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중국에 파견되어서 활동하다가 돌아왔습니다. 현재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이하 KOVA)에서 간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 ODA Watch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KOICA
활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ODA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국제관계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향후 진로와도 연계성이 크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또한 현재 근무하고 있는 KOVA의 활동과도 연관이 크기 때문에 사무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3.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활동을 하게 된 이유나 그 때 들었던 생각, 문제점 등이 궁금합니다.
넓
은 세상에서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해외를 경험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해외봉사활동이라는 방식을 택했고
그것이 저의 많은 것을 변화시켰습니다. 삶의 가치를 비롯해서 공부의 방향까지 제 인생의 두 번째 터닝 포인트와 같은
경험이었습니다.
활동하는 현장은 각 상황마다 정말 많은 차이가 있어서 공통적인 문제점을 꺼내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서 얘기한다면, 봉사자들에게 활동의 제약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NGO에서 활동할 때도 다른
NGO에 대해서나 현지어를 공부할 때 제약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고, 정부기관을 통해서 활동할 때도 현지 활동기관이 봉사자의
활동에 많은 제약을 주려 했었습니다.
4. 그렇다면 그 문제점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해외봉사활동이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NGO
와 정부 기관에서의 현지 활동을 함께 경험했던 사람으로서 두 기관의 개선점을 감히 단순 비교한다면, 전 ‘지속성의 담보’와
‘관료성의 탈피’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NGO의 경우는 이상을 찾아서 온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적인 벽을 넘지 못하거나
또 다른 이상을 찾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지속적인 업무의 연계가 어려운 경우들을 종종 봤습니다. 반면 정부 기관은
지나치게 형식에 매여서 놓치는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을 위해 가치 있는 사업이 있다고 해도 소속기관의 이해관계와
무관하다면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도 많았습니다.
NGO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활동인프라가 잘 구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기업 등 여러 기관과의 협력 관계 발전을 통해 재정의 안정적 확보를
비롯해 인적 네트워크의 관리 등도 체계적으로 준비돼야 할 것 같습니다. 반면 정부기관의 관료성 탈피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운영진의
변화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인사제도와 철학 등 핵심적인 운영 개선이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5. 마지막으로, 새로 시작하는 ODA Watch 2기 활동을 통해 배우고 싶은 것과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무
엇보다 함께 꿈을 나누는 모임의 형태로 갔으면 좋겠고 그 꿈이 개인과 국가를 넘어 인류를 위한 진보의 걸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ODA Watch 팀에는 참 멋진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함께 활동하게 된 것에 대해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회원인터뷰는 섭외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몇 명의 회원에게 전화연결을 시도했었지만, 퇴짜 맞기 일쑤였다. 지친 마음으로
계속해서 섭외를 시도하던 중 한 회원이 그동안의 실패를 단숨에 잊게 해줄 만큼 시원하게 승낙했다. “인터뷰해주신다면 제가 다
감사하죠.”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 나온 응답은 개인적인 궁금증까지 자아냈다. 그래서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청했는지도
모르겠다.
Q.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저는 지금 학생신분으로 있고요. 국제관계학을 공부 중입니다. 특히 대외정책에 관심이 많아요. 해외봉사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간단하게 세계의 시민으로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Q.해외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요. 특히 세계시민이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 사건이 있나요?
사
건이라기보다는 젊은 시절에 많은 준비를 하고 싶었어요. 그 시절에 나의 미래에 대한 것을 고민했고, 글로벌, 글로벌 하는 사회적
흐름에 따라 막연하게 세계를 경험하자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20대에는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해 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해외에 나가보기로 결심한 것의 첫 번째 실천이 해외봉사였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영향이 컸기
때문에 지금의 이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학연수나 유학이 아닌 봉사활동을 통해 해외에 대한 경험을 시작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Q.많은 활동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뜻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몽골에서의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 계획하는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미국을 염두에 두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어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서 몽골에 갔었어요.
몽골은 추울 때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대단히 추운 지역이지요. 한국에서 여성분들이 오면 추워서 고통스러워 눈물을
보이기도 한답니다.(웃음)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지만 현지인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많았어요. 현지인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죠.
학생들에게도 가능하면 먼저 선진국을 경험하는 것 보다는 개발도상국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선진국의
삶은 기존에 여러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잖아요. 개발도상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 지를 겪어보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이 활동의 지속성을 위해서 정말 중요한데요. 몽골에서 그것을 찾았습니다.
Q.해외에서의 봉사활동이라는 것은 주로 어떠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국
제개발협력이라고 하는데요. 현지인들의 삶의 개선에 대한 일을 하게 됩니다. 가령 먹을 것이 부족하면 먹을 것을 주지요. 하지만,
그러한 것에 한계를 느낀 후에는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죠. 교육도 하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농사짓는 법만 알면 살 수
있나요? 그렇게 IT교육 등의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교육이나 지원도 하게 되고요. 결국 그들의 삶의 질적 개선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한답니다.
Q.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 ‘세계시민’이라는 생각을 고취시키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
겐 911테러가 그것을 체감할 수 있던 계기였습니다. GBA(Good Book for All)활동을 하는 동안 배를 탔는데,
배에서 32개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서로간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는 훈련과정이
있었습니다. 이 훈련기간에 911테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훈련 중이던 미국친구들이 30여명 있었는데, 그곳에서 간접적이나마 미국사람들이 느끼는 911의 충격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의 주변인이 사고를 당하는 것과 전혀 무관한 사람이 겪는 것은 와 닿는 느낌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그때의 경험을
통해 내 주변사람들이 이러한 아픔과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꼈어요.
또 한 번은 이라크전쟁이 발발했을 때였습니다. 가까운 선배가 그곳에서 인간방패로 활동했었는데요. 전장 한 가운데서 활동하는 선배에 대한 걱정을 남다르게 체감하면서, 우리의 문제들이 공유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자원의 세계화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느끼든 그러지 못하든 우리의 삶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경험을 통해 개인적인 책임과 한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거죠.
Q.결국 실질적인 체감이라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단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감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성향을 본다면 그러한 체감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이러한 시민참여활동의 사상이나 종교 같은 내적인 계기가 있나요?
개
인적으로 종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활동의 동기는 종교적 신념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제가 믿는 종교에선 의와 정의를
강조하고, 그것을 지키고 행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신념은 제게 있어서는 진리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편적
공익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Q.경실련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제가 기독교에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서경석 목사님에 대한 활동에 관한얘기를 들으면서 접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지방에 있었기 때문에 활동하기는 힘들었지만, 알고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미지는 좋지 않았어요. 서경석 목사님에 대한 것도 그렇고, 이념싸움 등의 사건에서 경실련의 입장이 그다지 좋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경실련에 가입하고 활동에 동의한 것은 최근에 경실련이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실련이 정부에 대해 강하게 목소리를 냈던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 그런 일을 한 것이 제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저는 특히 경실련 ODA Watch 프로그램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ODA Watch의 경우 전문가그룹과 실무자그룹 그리고 학생그룹의 3단계의 소통구조와 활동구조가 이루어 졌다는 부분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실 보통은 중요한 가치를 운동성 있게 운영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NGO의 경우 자문 교수 등
엘리트층의 결집은 잘 되어있지만, 학생과 실무자그룹과의 연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경실련도 머리만 컸지 몸통부분이 작습니다.
학생활동을 하면서도 동아리활동도 NGO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양한 계층이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원합니다. 시민단체도 그런 것을 원하고 있고요. 하지만, 못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경실련, 참여연대 등과 같은 대표적인
시민단체들도 머리만 큰 경우가 대부분이죠. 실제 역할이나 활동을 하기에 동력이 약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엘리트층이 활동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한국의 애드보커시(Advocacy)활동이 다 그렇습니다. 사실 어느 단체나 세미나 등의 활동은 많이 합니다.
하지만, 사실상 현재의 젊은 층에서 그러한 지적욕구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애드보커시활동도 이제 체감의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Q.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 이상으로 체감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가요?
고
전적으로 이야기되었던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것이 한국사회자체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 공감을 합니다. 실질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연봉이나 취업에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외침과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민단체가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또다시 점검해야할 문제이며 이는
회원들이 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하지 않는가!!” 외쳐야 하죠.
Q.활동을 하면서, 과거 현장에 있을 때에 제도적 측면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는 이해된다거나 하는 점이 있나요?
많
이 있죠. 특히 정책결정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범위의 틀을 스스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정책과 현장과의 격차는
계속 존재해왔습니다. 한국은 현장 활동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구조자체가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계층과 분리되어있고, 이 때문에 정책결정자들이 현장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Q.경실련의 국내활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도 혼란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실련이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겠지만, 현재 그러한 부분에 대한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에 촛불도 들어보고 하면서 정치적 역할의 필요성에 대해 느꼈습니다.
Q.경실련에서 정치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 부족하다는 말씀이신가요?
당연히 경실련에서는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없죠. 서경석 목사가 비판을 받은 것도 그것 때문 아닙니까. NGO라는 것이 공공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러한 정파성을 가질 수는 없는 거지요.
Q.그것이 시민단체의 내제적인 한계라는 건가요?
시민단체라는 틀이 가진 제약성이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겠지요. 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면 정치인 할 일을 해야 하고 경실련은 소명대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주변 분들에게 경실련회원으로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하시겠어요?
실
제로 친구들에게도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가서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굳이 경실련이 아니더라도 어느 단체를 후원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월급 받는 생활을 잠깐 해본 적이 있었는데, 여러 단체에 회원가입과 후원을 통해 활동할 수 있다는 데에 기쁨을 느꼈었습니다.
Q.그렇다면 회비를 낸다는 것이 간접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저는 직접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동의하지 않으면 그 단체에 돈을 내지 않기 때문이지요. 만약 경실련이 내가 동의하기 어려운 일을 한다면 당장 가입을 탈퇴하고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맞겠지요.
저도 시민단체 활동을 해본 적이 있는데 사실 마음으로 함께해주고 동의한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Q.앞으로 경실련이 나가야할 방향이 어떤 걸까요?
보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동층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쁘게 참여할 수 있게끔 활동층이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령 ODA Watch의 경우 전문가집단과 실무가집단 그리고 학생집단 각자할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교류합니다. 경실련에서 이렇게 많은 층이 연결될 수 있도록 경실련이 힘써주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부분은 특히 한국의 학생에게 중요합니다. 활동 없이 책상에서만 하는 공부가 아닌 자발적으로 동기를 찾고 움직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실련이 이러한 활동할 수 있게끔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학생에게는 동기를 부여해주고 실무가에게는 판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Q.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공공성을 위해 일을 하다보면 일정부분 대표성을 갖게 되고 또 나서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시긴 하지만 반드시 안티가 생기긴 하는 것 같아요.(웃음) 이러한 과정에서 상처를 받고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적인 신념을 통해서 극복하거나 서로 비슷한 상황과 처한 사람들과 동기를 점검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주변사람들의 격려가 큰 도움이 됩니다.
무엇을 하는가가 못지않게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단체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중요한데 동기부여나 정서적정화작용이 거의 안 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 분에 대해 급히 언급하자면 ‘도인’이라 하겠다. 물론 오늘은 백두산에서, 내일은 한라산에서 내공을 쌓는 노인이 아닌
세계 각지로 나다니는 도인을 말한다. 그 내공만큼이나 말씀도 ‘킹왕짱’ 빠르셔서 후에 인터뷰 내용을 다시 해석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지만, 이리저리 정리하며 문득 떠오른 그의 살인미소는 그것마저 웃음 짓게 만들었다. 오랜 기간 푹 삭힌 김치를
가로로 쫙 찢는 미소랄까, 코피온 3기 하재웅 단원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하재웅 단원을 만난 장소는 종로구에 위치한 KOICA 제1본관의 KOVA(Korea Overseas Volunteers
Association,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 사무실, 현재 그가 간사로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는 내부적으로 단원들의
회원관리와 함께 사진전, 지역축제와 같은 공익사업을 펼치며 가끔 초·중·고등학교로 강연을 나가기도 한다. “학교에서 ‘문화이해를
위한 국제협력’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데 예전보다 관심은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무슨 질문을 많이 받느냐고 물었더니
이러한 일을 하게 된 동기에 관한 것이라는데. 어떤 때는 학생들에게 ‘돈은 안 버세요’라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질문도
있었다며 크게 웃음 지었다.
지난 1999년 코피온을 통해 몽골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하재웅 단원은 “처음엔 그냥 막연히 해외에 나가서 배워보고 싶었고,
미국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코피온을 접하게 됐다고. 굳이 몽골을 1지망으로 쓴 이유에 대해서는 국가보다는 기관을, 해외에는 처음 나가기에 각 기관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살폈다고 한다. 그가 가진 종교적인 성향도 이에 한 몫을 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과 관련된 상황과
방법을 항시 고려할 만큼 준비에 철저했으며, 훗날 그에게 닥친 선택의 길이 무엇이든 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철저한 성격만큼 하재웅 단원이 해외봉사에 있어서 강조하는 점은 ‘현지화’다. 아마 그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가 아닐까 싶다. “유목민 생활을 했어요. 일주일에 한번은 그들의 거처에서 자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랬어요” 당시 그는
생존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문제도 없진 않았다. 이를테면 한국어 강의를 맡았는데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무료로 강의할 수 있겠다 싶지만 돈을 받고 강의하는 것이 좋을지 하는 것이었다. 또한 공산주의 풍토로 인해
현지인들이 강하게 밀치는 방식의 수업을 원하기도 했다. 이야기 하나하나, 현지화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이 묻어 있었다.
유목민 정착 문제와 관련해서는 약간의 논쟁도 오갔다. 정착을 통해 교육이 이뤄지고 장기적인 발전이 만들어지지만 반대로 우리
식의 발전모델을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는 3기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이에요. 아이들은 생명을 존중받아야 하는데 수질문제 등으로 죽는 편이 많거든요. 개발논리보다 인권문제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이러한 사업의 일환으로 농업 개발프로젝트 등 농산물의 생산량은 어떻게 늘리고, 어떻게 수확하는지,
어떻게 쉬는 땅을 활용하는지 방법을 알리기도 했다. 가타부타도 필요했지만 현장은 더욱 실질적인 것을 원했다.
“
그리고는 배를 탔어요” 물론 새우잡이 배는 아니다. “몽골에서 돌아오니깐 둘로스(Doulos)호가 한국에 들어온 거예요" 일단
둘로스호에 대해 말하자면 타이타닉호보다 2년 늦게 건조된 배로 현존하는 최고령의 여객선이라고 한다. 하재웅 단원은 ‘떠다니는
민간 UN’이라 불리는 이 배에 우연찮게 탑승해 세계 곳곳으로 활동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갑판에서 돛을
올려라 내려라 부르짖으면서 그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를 돌았으며 교육사업과 선교활동을 통해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차츰 확대해
나갔다. “아침에는 흑인들 보고 신기하다, 점심에는 파란 눈을 보고 신기하다, 저녁에는 안으면서 인사하고 그러는 게
신기하잖아요” 5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키르기스스탄과 중국 하얼빈에도 오랫동안 머물렀는데 그 말에 따르면 현장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이론을 탐구했다고 한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KOVA로 당도했음에도 아직 하재웅 단원에게는 종착지보다 경유지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다. 한때
언론인을 꿈꿨던 그였지만 활동으로써 삶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을 수 있었고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한 동기 또한
달라질 수 있었다는데. “꿈을 펼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방법적인 측면에서 해외봉사활동을 옵션으로
뒀으면 좋겠고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책상에서의 고민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실제적인 행동이 아닐까. 이다음에 그가 향할 곳은
어딘지 사뭇 궁금해진다.
▶ 장기 국제자원활동 경험하기 ; NGO - INGO - KOICA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동기는 호기심과 더불어 한국에 살아도 세계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나름의 포부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첫 발을 딛은 곳이 국제개발 NGO인 국제기아대책기구였다. 농업개발, 어린이 개발 프로젝트 등 다양한 현장 활동을 몸으로 배우면서 새로운 의식의 전환이 있었다. 난 전혀 몰랐던 새로운 삶!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뭐라도 하고 싶다는 세계시민의식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귀국 후 한국을 방문한 MV Doulos호와의 인연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떠다니는 UN으로 불리는 Doulos호는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내 경우에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선교활동을 비롯해서 각종 문화교류 프로그램과 지역개발 프로젝트를 경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특히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을 갖춘 배안에 52개국에서 온 320여 명의 청년 및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는 그 곳은 자체가 지구촌이며 다문화 체험장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KOICA 한국해외봉사단원으로 중국에서 활동을 했다. 한국어 분야로 있었지만, 한국어교육센터 설립을 진행하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와 지역 수요개발 등의 ODA업무도 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장기 국제자원활동 프로그램관련 포럼 발제>
▶ KOVA(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를 통한 봉사단 사업의 변화 욕구
국제자원활동을 하면서 제도에 대한 영향력을 크게 실감했다. 우선 한국해외봉사활동은 그 가치와 의미에 비해서 운영 방식에 있어서 정말 아쉬움이 많았다. 그래서 봉사단 사업의 변화를 모색하다보니 자연스럽게 KOVA와의 관계가 깊어졌고, 그러던 중 자리가 생겨서 사무국 업무까지 감당하게 되었다. 다양한 귀국 단원 지원업무들이 있었지만, 먼저 내가 집중한 것은 봉사단 정책이었다. 이론적인 배경의 부족함을 느껴서 ODA Watch 활동을 겸하면서 지속적인 봉사단 연구작업을 병행할 수 있었다. KOVA업무를 통해 KOICA를 비롯해 국회와 국제개발NGO 등을 접하면서 다양한 이해관자들의 입장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성급한 변화보다는 대안 만들기를 고민해 왔다.
<KAIST에서 개도국 과학기술지원단 강의>
▶ 봉사단 사업 중 교육 및 홍보 분야로 전문화되어 가다.
개인적으로 외향적 성향이 강하다보니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게 되고, 그렇게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육 및 홍보 분야로 활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최근 홍보의 중요성도 절감하면서 더욱 큰 관심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KOVA사무국을 나온 이후 학생이라는 자유로운 신분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우선 가장 많이 하는 것이 강의 활동이다. KOVA 국제협력특강 강사로 여전히 초․중․고등학교를 비롯해서 대학교까지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KOICA봉사단 국내훈련 강의와 개도국 과학기술지원단 강의를 비롯해서 COPION, (사)메디피스 등 국제개발NGO에서도 강의를 해오고 있다.
국제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더불어 YPN(Young Professional Network)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학생지도(유엔학생협회, 가온누리 봉사단 등)를 비롯해서 UN 캠페인 진행(세계평화의 날 조직위원회) 및 국제개발협력 자료 보급(MDG리포트 한국위원회) 등의 활동을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작년부터 발행되고 있는 MDG리포트 한국어판은 최초의 MDG리포트 한국어 번역판이면서, 다른 UN공용어들보다 가장 먼저 출간된 번역판으로 성공적인 자료보급 사례로 UN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Web2.0을 공부하면서 ‘블로거들의 오아시스라는 BLOSIS30.com’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BLOSIS30는 이번에 ‘한국언론재단의 블로그 연구’를 지원받아 블로그, 트위터 등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현황을 연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worldfriends.kr이라는 해외봉사활동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블로그를 통한 개인 브랜드 구축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블로그를 통한 교육 효과와 파급 효과 그리고 이를 이용해 개인 역량 관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배우면서는 이러한 훌륭한 도구를 활용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빈곤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현장에서 몸부림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꿈이 가득했던 청년시절 난 미디어를 통해서 비춰지는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빈곤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의문점이 생겼고, 왜? 저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 난 무엇을 해야 할까? 그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첫 현장 활동을 시작했다. 당장 배고파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그들을 위해서 열심히 밥도 퍼다 나르고, 음식 값을 줄이기 위해서 시장 조사도 철저히 하며 빈민지역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 프로젝트에 열심히 참여했다. 눈물을 흘리면 고마워하는 노인들을 보며 보람도 컸지만, 현지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애정을 갖게 되면서 좀 더 큰 역할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구호활동의 정석 첫 번째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라’를 실현하고 싶어졌다. 이에 관심을 갖으면서 KFHI 사무소에서 실행하고 있는 농업개발 프로젝트에 보다 열심히 참여하게 되었다. 유목민인 몽골사람들에게 농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대단한 열정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씨앗을 주는 일을 비롯해서 농기구를 잡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교육도 아주 세부적으로 진행해야만 했다. 수확을 했어도 현지에서 소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요리법도 알려 줄 필요가 있었다. 놀라운 변화들을 지켜보면서 재미도 컸지만, 인턴 혹은 봉사자라는 신분을 한계를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가기 전에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활동은 무엇일까?를 고민했을 때 결론은 건강한 현지 활동가를 세우는 것이였다. 그래서 이후에는 일보다 현지 청년들과의 관계에 더욱 중요성을 두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 곳에서 진행하던 한국어 강의는 많을 때는 4곳까지 확장해서 진행하기도 했고, 컴퓨터 교육에도 뭔가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기 위해서 열심히 왔다갔다 했고, 때론 태권도 교육까지 하며 현지 학생 및 활동가들과의 접촉점을 넓혀 나갔다. 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양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점차 크게 느끼고 배우게 된 것이다.
빈곤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 이론과 씨름하다.
효율적인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위해서 가장 많이 논의되는 세 가지 화두는 주인의식(Ownership)․역량 개발(Capacity development)․거버넌스와 파트너십(Governance & Partnership)이다. 나는 다양한 국제개발NGO실무자들과 교류하면서 봉사단 사업에 대한 많은 토론도 함께 나눈바 있다. 많은 현장 실무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봉사단 사업과 같은 파견 사업이 과연 현지인들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회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지닌 쌍방향적 소통과 교류에 초점을 둔다면 전혀 다른 시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개발도상국가(recipient country)의 역량뿐만 아니라 지원하는 국가(Donor country)의 역량 강화적 측면을 함께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신흥 공여국으로 이러한 역량강화가 무엇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폭 넓은 전문가층을 확보하고, 관련 정보들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러한 작업은 일부 원조기관 혹은 개발NGO들만의 역량 개발이 아니라, 우리나라 시민사회의 참여와 동의 가운데 실행해야한다. 국제개발사업의 실행 주체와 후원자(혹은 납세자)들 간의 인식 격차를 줄이고,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이해를 높이며 관련 정책 조율(Alignment)까지 바라본다면 보다 현장 중심의 활동가들을 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역량 개발을 통해서 빈곤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는 말은 예수가 제자들을 부를 때 사용했던 말이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개발도상국가들에서 활동해야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고 본다. 먼저는 사업 참여자들의 역량을 개발시켜야한다. 건강한 직업윤리와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내면의 역량까지 겸비한 인력을 만들기 이해서는 보다 체계적이며 현장 중심적인 파견 사업이 되어야한다. 또한 그들의 활동은 지역 주민들의 역량을 개발시켜 나아가야한다. 그러한 역량 개발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상호간의 마음을 소통함으로서 가능해진다. 그러한 소통의 메신저로 현장에서 청년들이 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히 현장에서의 2년뿐만 아니라 이후의 삶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만들어 가기 위한 지속가능한 참여 활동을 통해서 많은 한국의 청년들과 시민들을 세계시민의식으로 선도하는 국가대표 현장 활동가들이 위와 같은 파견 사업을 통해서 양성되어지기를 희망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보편적 인권에 깊은 뿌리는 둔 꿈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가 “우리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정한다.”는 선언의 진정한 뜻을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북한의 청년들과 함께 세계의 빈곤 문제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활동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조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문화의 힘을 가져야만합니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입니다.
해외봉사를 비롯해서 국제개발협력 파트에서 활동을 하다보니 여러 유사 영역에까지 활동을 넓히는 사례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중에 하나가 국제 보건의료 NGO인 Medipeace에서까지 활동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성공회대학교에 참석자들 대상의 사전 교육이 진행되는 곳에서 사람도 만나고 토론 진행도 하는 자리가 있었다. 항상 사전교육에서 교육을 담당하면 내가 강조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동기에 대한 점검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해외봉사활동과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참여하는 동기를 물어보면, "해외에서 남에게 도움을 주거나하는 봉사활동에 대한 관심", "국제구호활동 혹은 국제기구의 활동에 대한 관심", 혹은 해외경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할 때 20대에 가장 중요한 활동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야 향후 진로는 선택할 때 자신의 성향과 장점에 맞춰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고, 이것이 개인의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을 찾는 과정의 하나로 해외봉사활동도 생각하라고 나는 많이 조언한다. 그런 과정의 하나로 보다 높은 교육의 목표와 경험치를 달성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참여하는 동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해외봉사활동에 참여하는지? 향후 어떠한 활동(직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활동과 관련해서 이번 해외봉사활동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이번 해외봉사활을 통해서 배우고자는 부분은 느끼고자하는 부분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이러한 것은 막연히 생각만 하기보다 구체화해서 기록으로 남겨두고, 해외봉사를 하는 중간중간 그리고 귀국할 때 비행기 안에서 그러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점검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대부분 귀국하면 귀국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는데, 그 보고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해야하는 것도 그러한 목표가 무엇이었고 그러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뒤돌아보는 것이다.
가능하면 나는 참여 동기를 직업과 연계해서 고민하고, 그러한 고민을 수동적인 자세로하지 말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관계 분야를 탐구하라고 권한다. 국제구호활동에 관심이 있다면 관련된 기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고 무슨 업무를 하는지? 그곳에서 필요로하는 자질은 무엇이 있는지? 등을 정말 깊이 있게 조사하고 관련된 세미나나 워크샵 혹은 관련 교육 프로그램 등에 적극 참여해보면 빠르게는 2달이면(보통은 6개월 정도) 어느 정도 관계 분야의 특징과 현황 그리고 향후 전망까지도 어느 정도는 파악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다.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정하고 정말 열심히 그 길을 위해 노력해 보면 추후 자신이 원하는 진로에 변화가 생긴다해도 그 진로를 놓고 고민했던 내용이나 관련해서 쌓은 지식은 고스라니 자신의 자산이 된다. 이 자산은 향후 진로에 따라 유형적 자산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진로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심적인 능력과 중요한 동기로도 작용하게 된다.
둘째, 바른 자세와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봉사라고 하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준다는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해외봉사자들이 가는 곳은 말도 안통하고 지리 및 거의 모든 문화와 환경이 생소한 다른 나라이다. 그런 곳에서는 의주식 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자신의 의식주조차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데 과연 얼마나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실제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욱 많을 수 받기 없는 이유이다. 우리가 가진 것은 나눠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가지고 가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많은 물질적 재화를 가지고 가게 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캠프 참가자들이 문화적 교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준비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소개하고 나누고 그것을 통해 현지의 문화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실제로 물질적 재화를 통해서 교류를 하다보니 흔히 아는 '구제'라는 요소도 포함될 수 밖에 없기는 한데, 이는 또한 국내적 상황과 국제적 상황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인색해야만 한다. 우리도 어떠한 도움을 받을 때 편한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받는 것과 모르는 남에게 받는 것은 정서적으로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가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개도국 주민들 중에서도 국가에 대한 가존심이 강한 사람이 많다. 이러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냥 별 생각한 없이 한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가 큰 파장을 몰고오는 경우를 무척 많이 봤다. 사실 이러한 부정적 요소들 때문에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해외봉사활동이 장기적으로 보면 현지인들의 생활 개선에 오히려 부작용이 많다고 보기 때문에,우리는 해외봉사활동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일례로 내가 첫 해외봉사활동을 했던 몽골에서 있었던 일이다. 함께 활동했던 단원이 3명이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유아교육을 전공했었다. 현지 도착해서 다음 날 차를 타며 시내를 돌 때 현지 직원이 어느 건물을 가리키며 저 건물은 유치원이라고 얘기했었다. 이를 듣던 유아교육 전공단원은 "몽골에도 유치원이 있어요?"라는 한 마디를 했을뿐인데, 이 말 한마디가 현지 직원들의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주는 사례가 되었던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대략 6개월 동안 활동을 했었다.) 나중에 몽골에서 생활하면서 그러한 발언이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니도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몽골의 집권당은 공산당이었는데, 공산주의는 이념적으로 평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기초 교육에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발전되어 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자존심이 강한 몽골사람들에게 그러한 발언을 했으니..
대략 이러한 내용들을 참가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왔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귀담아 들어주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에 가도 어디나 신호등은 있다. 그러나 아쉽게 그 신호등은 색의 변화와 상관없이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 일부에서는 이러한 준법 정신을 선진국의 기준인 것처럼 표현하기도 하는데, 미국도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서 신호 등이 무시되는 사례들이 있는 걸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듯 -
몇 년간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했던 일이다.
도시에는 어디나 넓은 도로들과 함께 신호 등이 있지만, 당시에는 올림픽 전이여서 그런지(?) 신호등의 색깔변화에 따라 사람들이 반응이 큰 차이가 없었다.
초기 북경에서 현지 적응훈련을 받을 당시에는 한국에서의 습관 때문에 신호등을 지키며 거리에 다녔지만, 점차 중국에서는 신호등이 지켜지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순간순간 갈등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나 역시 신호등의 색깔변화에 둔감해져갔다. 아무래도 신호등을 지키는 것보다는 안지키는 것이 편해서 그랬을 것이다.
활동지역에 도착해서도 그냥 편한데로 신호등을 안지키며 살다가 개인적인 정체성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난 그래도 현지에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의 하나로 파견된 한국해외봉사단원이고, 현지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기 위해서 온 사람으로서 나의 행동과 활동을 점검하게 된 것이다.
언어도 익숙하지 않고, 현지인들에게 난 역시 다가서기 쉽지 않은 외국사람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상대적은 약하지만) 그리고 난 2년 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야하는 봉사자의 신분인 것이다. 여러가지 제약들 때문에 내가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노력은 극히 제한적인 것이 많았다. 솔직히 매우 노력을 한다해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제약들이었다.
그래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우선 내가 지향해야하는 행동양식이었다. 내가 이 지역에서 만들 수 있는 발전은 무엇인가? 지향점은 어디로 두고 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러한 고민에 이르자 쉽게 신호등을 무시할 수 없었다. 현재는 무시되고 있는 색깔의 변화지만, 앞으로는 지켜져야 하는 발전의 가치로 신호등을 주목한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한 후로는 열심히 신호등을 지키지 시작했다. 불편한 점은 한 두가지가 아니였다. 우선 우리와 신호등 색이 비슷한데, 보행자가 빨간 신호등에서 행단보도에 대기하는 모습은 당시 지역에서는 이색적이 모습이었다. 그렇게 내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현지인들이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파란 신호등에서 행단보도를 건널 때도 마치 신호를 거기는 사람처럼 차량을 피해서 다녀야만 한다. 짐까지 많은데, 신호등에서 대기하고 거너갈 때도 차량들을 피해 다녀야하는 상활들이 연출될 때는, 이러한 이질적인 행동양식을 꼭 지켜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몇 번이고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생활을 하다보면, 종종 큰 보람도 느끼게된다. 우연히 나와 같이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정겨움과 반가움! 그리고 보행자 신호가 파란불이라고 행단보도에서 기다려주는 차량을 만났을 때는 왠지 모르는 벅찬 감동까지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한 작은 노력이 현지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을지 짐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러한 현장에서의 노력이 날 변화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과의 부딪힘 속에서 난 점차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러한 노력이 한국해외봉사단원의 가치가 아닐까?생각한다.
다음에는 송두율 교수가 얘기했던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해외봉사단원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